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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6.27(일) 16:51

반가운 문학 회생책


최근 발표된 교보문고의 올 상반기 베스트셀러 현황은 자못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여준다. 실용서와 어학서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상반기 베스트셀러 50위 안에 든 한국 소설은 김훈의 〈칼의 노래〉(9위)와 〈현의 노래〉(42위), 그리고 이상문학상 작품집인 〈화장〉(29위) 등 세 종과 김주영의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45위)뿐이다. 시는 단 한 권도 50위 안에 들지 못했다.

반면, 번역소설들의 선전은 두드러져 보인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가 전체 3위와 4위에, 에쿠니 가오리의 〈냉정과 열정 사이〉와 미치 앨봄의 〈에디의 천국〉이 각각 12위와 19위에 오른 것을 비롯해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조앤 롤링) 〈톨스토이 단편선〉 〈해변의 카프카〉(무라카미 하루키) 등이 50위권 안에 포진해 있다. ‘늙다리 신인’ 김훈이 혼자서 세계의 베스트셀러 작가들과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수십만 내지는 100만부를 훌쩍 넘곤 하던 우리의 시집 판매량을 외국 문인들에게 자랑하던 시절이 있었다. 문학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국내 소설들이 서로 각축하면서 독서 시장을 이끌던 시절이 있었다. 이번 상반기 베스트셀러 동향을 보면 그런 호시절은 영영 지나가 버린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이제 한국의 문학도서 시장에서 한국문학 작품을 만나기란 어렵게 된 게 아닌가

한국문학의 침체와 퇴락은 시장의 수치가 입증하기 전에 이미 자명한 바 있었다. 시의 주변부화가 먼저 진행되었고, 이어서 소설의 죽음에 관한 풍문이 문단과 출판계 안팎을 떠돌았다. 한국문학은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일은 장례 준비뿐이란 말인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난 시절 한국의 시와 소설이 거둔 상업적 성과는 차라리 이변이자 기적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시장의 논리가 지배하는 가운데 본격문학이 ‘성공’하거나 아예 살아남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일임에랴. 한국문학은 지금까지 일종의 ‘미션 임파서블’에 종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자국 문학의 안부에 무심하지 않은 외국 정부들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문학을 지원하는 것은 문학의 이런 취약한 속성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책에 대해 초판 부수를 구매하여 도서관 등에 공급하는가 하면, 대출 횟수 만큼 별도의 인세를 작가에게 지급하며, 자국 문학 작품을 번역 출간하는 외국 출판사에 대해서도 제작비를 지원하는 등이 그 지원책의 일부로 알려져 있다.

반면 한국문학은 그동안 거의 전적으로 시장 논리에 내맡겨져 있었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런 점에서 얼마 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로또 복권 기금 52억여원 상당을 내년도 ‘문학회생 프로그램 지원사업’에 쓰기로 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기획예산처와 협의를 끝내고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는 이 방안을 보면, 사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이달의 우수문학도서 보급’과 ‘문예지 게재 우수작품 선정지원’이 그것이다. 앞엣것은 매달 25종 가량의 문학책을 종당 2천권씩 구매해 공공도서관과 각종 시설에 공급하는 방안이다. 시와 소설을 중심으로 문예지에 발표된 우수작을 선정해 분기별로 시상하는 것이 후자의 방식이다. 이 두 가지 지원책과 함께, 역시 복권기금을 활용하는 ‘올해의 예술작품 축제사업’에도 다른 갈래와 함께 문학이 포함되어 있어 문예진흥원의 문학 지원은 다각도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문단과 출판계가 한결같이 환영의 뜻을 나타내고 있는 가운데, 걱정과 불만의 소리도 없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문학은 문화예술의 기본이다. 문학이 살아야 전체 예술이 자생력과 경쟁력을 지니게 된다. 문인과 출판사와 독자에게 두루 이로운 이 사업이 모쪼록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더욱 확대 발전하기를 바란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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