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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6.13(일) 16:30

세상을 바꾸는 음식


어릴 때 집에서 자그마한 양계장을 했다. 저녁 손님상에 닭백숙이 오를지는 아침부터 알 수 있었다. 먼저 솥에 물을 끓인 뒤 이리저리 달아나는 닭을 잡아 목을 비틀어 끓는 물에 적셔 깃털을 벗긴다. 머리와 다리를 잘라내고 창자를 골라내는 구경을 다 마치고 나서 집안에 냄새가 진동하도록 푹 고는 것을 기다린 다음에야 구수한 닭고기를 맛볼 수 있었다.

이번 불량 만두 파문을 보면서 불현듯 옛날 생각이 난 것은, 요즘 음식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돼 간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문화인류학자 김두진씨가 “켄터키프라이드 치킨이 아니더라도 만드는 고생과 정성이 사라진 음식은 모두 패스트푸드”라고 단언했듯이, 편리함과 먹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우린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그렇다고 현대인의 식생활이 과거보다 나빠졌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요즘처럼 잘먹는 시대는 유사 이래 없었다. 프랑스의 루이 16세는 사냥에 나서기 전 닭 한 마리와 양고기 구이, 달걀, 햄, 포도주 한 병 반을 해치웠고, 돌아와서도 저녁식사를 듬뿍 먹었다고 한다. 17세기까지 유럽 귀족층에 만연했던 이런 대식 풍조는 당시의 식량 부족과 불안정한 공급을 반영할 뿐이다.

몇 가지 통계를 보면, 우리의 식생활이 지난 20여년 동안 얼마나 급격하게 바뀌었는지 실감할 수 있다. 20대 성인 남자의 영양 권장량 기준인 하루 2500㎉를 달성한 것은 80년대 중반에 들어서다. 2000년 영양 섭취량은 3000㎉를 넘어섰다. 1980년과 2000년 사이 축산물 소비량은 세 배로 늘었다. 75년만 해도 음식비의 78%를 조리를 위한 신선식품을 사는 데 썼다. 2000년에 들어오면 가공식품과 외식을 하는 데 63%의 돈을 쓴다. 점점 더 간편하고 칼로리 높은 고급 음식이 우리 식생활을 차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식생활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가 치른 대가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음식 생산자와 소비자의 단절을 들 수 있다. 자기가 직접 재배하거나 동네 가게 또는 재래시장 단골 상점에서 구입하는 식품은 대형 슈퍼마켓에 쌓여있는, 종종 지구 건너편에서 알 수 없는 사람이 기른 뒤 수많은 가공과 유통과정을 거친 식품과는 분명히 다르다. 농작물에 포함된 영양분과 화학물질의 미세한 차이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마치 정상적으로 만든 만두와 버려지는 자투리 단무지로 만든 만두의 차이를 ‘과학적’으로 밝히려는 시도처럼 별 의미가 없다.

우리가 잃어버린 중요한 것은 식품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신뢰와 소통이다. 동네 시장에 단골 청과물 가게가 있다면 불투명하기 짝이 없는 수입 농산물을 속아 살 걱정은 없다. 만일 생산자 협동조합을 통해 생산 농민과 직거래를 한다면 믿음은 더욱 커질 것이다. 단지 건강에 좋고 안전한 농작물을 산다는 목적을 넘어 농민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나아가 농촌과 도시가 상생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면, 식품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

그렇다고 모든 국민이 유기농산물을 먹을 여건도 아니고 끼니마다 음식을 요리해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최근 친환경 농산물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지만, 농약을 덜 쳐 재배한 것까지 합치더라도 그 비중은 지난해 전체 농산물의 2%를 겨우 넘겼다. 이른바 ‘웰빙 바람’을 타고 유기농산물 생산과 소비가 가파르게 늘고 있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다. 외국산 ‘유기농 명품’을 찾는 풍조가 확산되는가 하면, 직거래보다는 유통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심지어 외국산 밀을 우리 밀이라고 속인 유기농산물 가공업자가 적발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얼굴을 맞대지 않고 신뢰가 깨진다면 다른 상품거래와 뭐가 다른가.

세계화는 밥상까지 올라왔다. 조류독감과 광우병, 그리고 작금의 만두 파문은 사고가 아니라 필연적인 세계화의 결과일 뿐이다. 김철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가 제안한 것처럼 이제 먹을거리를 바탕으로 한 도시인과 농민의 교류와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먹거리 정치’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조홍섭 환경전문기자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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