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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8.22(일) 16:56

마음을 파괴하는 사회


3살 난 아들과 함께 종종 텔레비전의 어린이 만화를 본다. 대부분의 어린이 만화에는 정의로운 ‘주인공’(들)이 ‘악당’을 물리치는 각종 장면이 나온다. 거친 충돌 장면이 보일 때, 신기하게도 아이는 당황하거나 인상을 쓰며 텔레비전을 향해 “그럼 안돼. 저 사람 아파!”라고 한다.

제작자들은 그런 폭력적인 장면들이 동심에 맞는다고 판단한 걸까. 그래야 흥행이 될 거라고 계산한 걸까. 그러나 오히려 폭력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이와 같은 장면들은 정서불안, 불쾌감, 공포감 등을 주게 된다. 인간이 폭력 능력을 보유함에도 불구하고 동심은 내재적으로 폭력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나는 폭력 장면에 어두워지는 아이의 표정을 보며 문득 이라크 침략을 떠올렸다. 아름다운 도시를 부수고, 희생자의 수와 포로 고문을 자랑으로 삼고, 지나가는 아이들을 재미삼아 쏘아 죽이는 미군들도, 시간을 돌이켜 두세 살 때는 영상적 폭력에 불안해하는 착한 유아가 아니었을까? 어렸을 적 세상을 환한 웃음으로 대했을 법도 한 그들이 어떻게 해서 천진난만한 ‘눈망울’을 잃게 됐을까?

물론 직접적인 원인은 대다수가 하층민인 그들에게 가난 탈출의 기회를 따로 주지 않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정글법칙’이다. 그리고 폭력에 대한 그들의 거부 의식을 마비시킨 것은 대물림 가난에 찌든 빈촌의 ‘폭력 영웅화’의 분위기와 이를 이용하는 군대 찬양 일색의 텔레비전 프로파간다이다. 그러나 경제·미디어 영향만으로 고용 살인자 만들기 과정이 다 설명될 수 있을까? 예비역 군인이나 장교, 전쟁을 반기고 찬양하는 중산층 이상의 미국 극우파는 단순히 배가 고프거나 프로파간다에 휘말려서 폭력주의자가 된 것이 아니다. 그들과 그들의 가난뱅이 출신 하수인들은 훨씬 더 일찍, 본격적인 차원에서 인간성을 잃기 시작했을 것이다.

국가적 살육은 폭력성의 극단적인 형태지만 전쟁 이외에 자본주의 세계에 내재돼 있는 폭력 장치들은 무수하다. 예컨대 사회적 자원(신분상승, 위신 등)을 놓고 벌이는 경쟁은 인간의 폭력화에 가장 많이 기여하는 제도적 폭력의 형태다. 학교에서의 성적 경쟁도 ‘남들은 다 잠재적인 적’이라는 폭력적 의식을 주입시키지만, 유치원 때부터 하는 대항적인 스포츠도 경쟁이라는 형태의 규범화된 폭력을 내면화시킨다. 운동이야 신체·정신적으로 필요하지만, 왜 꼭 남과 싸워서 승패를 가리는 운동을 정상적인 것처럼 가르쳐야 하는가? 몸의 움직임 자체와 과정을 즐기고 경쟁을 생각지 말라고 하면 안되는 것인가? 그러나 사회는 신체적 경쟁을 당연지사로 가르칠 뿐 아니라 대자본의 돈벌이일 뿐인 올림픽·월드컵과 같은 국가 대 국가의 상징적 대항전을 전지구적 볼거리로 만든다. ‘싸워서 이긴’ 자가 영웅이라는 허구를 어릴 때부터 진리인 양 착각하게 된 사람들이 폭력을 아파하는 어린아이의 본성을 간직할 수 있겠는가? 장성하여 경우에 따라 본인의 노력으로 폭력사회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평생 ‘국가’ ‘군대’ ‘성공’의 신화에 묻혀 살 가능성이 훨씬 크다. 몸이 멀쩡하다 해도 남을 걱정하는 측은지심을 잃어버린 마음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큰 사람은 어렸을 때의 마음을 잃지 않는다.”(大人者 不失其赤子之心者也: 맹자)

우리가 어릴 적 양심을 되찾고 우리의 아이들이 텔레비전 뉴스에서 볼 수 있는 미제 고용 살인자처럼 되지 않도록, 어릴 때부터 아이의 본성에 따르는 경쟁이 없는 교육을 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남의 아픔이 바로 내 아픔이라는 것을 근본으로 가르치는 교육이야말로 인간이 살 만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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