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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02.08(일) 19:22

성형수술, 혹은 욕망의 노예화


근·현대 한국의 사회사를 보면 지난 100년 동안 여러 가지 변화 양상들 중에 크게 돋보이는 것이 성형수술이다. 만약, 부모로부터 받은 신체발부를 귀중히 여겨 절대 손상하면 안 된다고 믿어 단발령에 목숨까지 내걸고 저항했던 조상들이 머리털은 물론 얼굴까지 뜯어고치는 요즘 사람들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물론 몸에 대한 유교적인 외경이 사라져 버린 것은 개인이 신체에 대한 결정권을 얻었다는 의미에서 자유의 진일보이다. 그런데 한국이 세계에서 성형병원의 영업이 가장 잘 되는 곳으로 변해 버린 것은 과연 ‘개인의 자유’의 발전일 뿐일까 오히려 심층적인 차원에서 ‘예속의 심화’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성형수술을 결심한 이들에게 “실패나 부작용의 위험과 빚을 지면서까지 왜 하려고 하는가”를 물어 보면 “나도 만족스럽겠지만 예뻐지면 무엇보다도 취직 문이 넓어진다”는 대답을 많이 듣는다. 나의 진로를 좌우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들의 내 외모에 대한 평가를 의식해서 성형을 한다는 것은 성형이 단순히 ‘신체에 대한 결정권의 행사’라기보다는 오히려 사회적 압력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신체발부를 종교적으로 인식하는 것도 ‘자유’라 볼 수 없겠지만 남의 눈을 생각해서 얼굴을 뜯어고친다는 것이 더욱 심한 ‘예속’을 의미하지 않는가

그런데 문제는 성형수술의 결정에서 예속의 원인을 단순히 ‘직접적인 외부 압력’으로 한정시킬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뻐지고 싶다’는 생각을 통상 자연스러운 욕망의 발로로 간주하지만 보다 심층적으로 해부해 보면 그렇지만 않다. 육체미에 대한 선망은 인류의 영원한 욕망이지만 성형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마음’은 구체적으로 어떤 욕구를 뜻하는가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예쁨’의 기준은 대부분 구미의 매체 자본이 정형화시킨 서구적인 이목구비의 ‘미’이다. 이 ‘미’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는 데는 스포츠신문이나 잡지, 그리고 텔레비전 등 국내의 상업적인 매체들이 주도적인 구실을 한다. ‘미’의 기준은 보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극히 개인적인 영역인데, 우리의 미인관을 작고 갸름한 얼굴, ‘백인처럼’ 높은 코와 늘씬한 몸집 쪽으로 ‘획일화’시켜버린 주범은 선조들이 신주단지를 모셨던 이상으로 서구를 모시고 있는 매체 자본들이다. ‘예뻐지고 싶다’는 말을 사회과학 쪽으로 해석한다면 서구 중심의 세계 체제와 지역적인 대리인들이 ‘표준’으로 삼는 신체 모델에 내 몸을 무조건 맞추려는 ‘체제(!)에 순치된 욕망’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위대한 마르크시스트였던 안토니오 그람시가 지배체제 규칙의 내면화와 이에 따르는 자발적인 복종을 ‘체제의 정신적 헤게모니’라는 용어로 개념화했을 때 그는 바로 이와 같은 현상을 이야기한 것이다. 서슬이 퍼렇던 일제 말기에 창씨개명한 사람들을 우리는 통상 ‘훼절한 인물’이라고 보는데, 남의 나라 총칼이 무서워서도 아니고 남의 나라의 지배적인 욕망이 머리와 마음속에 주입돼서 이름도 아닌 얼굴까지 갈아치우는 우리들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훼절’이라는 말마저도 맞지 않는 이유는 구미 자본이 유포하는 ‘미’의 이미지를 보편적인 것으로 믿는 사람에게는 이미 훼상할 수 있는 ‘절개’조차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절개’는 외물에 의해서 바뀌지 않는 나만의 영역, 즉 다양한 개인의 궁극적인 자유를 이야기하는 것인데 이러한 우리들이 ‘절개’를 가진 자율적인 개인들이라 할 수 있을까 매판적인 매체의 충성스러운 소비자이자, 주인이 던져 놓는 먹이를 주워 먹는 정신적 노예와 크게 다르다 할 수 있을까

국토로 쳐들어와 물리적으로 짓밟는 외세들을 퇴치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욕망에 대한 개인의 주권을 회복하기는 훨씬 더 힘든 일일 것이다.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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