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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3.03.02(일)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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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하고 또 파격하라


“일부 파격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파격적으로 보는 시각이 타성에 젖어 있다고 생각한다.” “40대 전직 군수와 변호사를 행자,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한 것은 지나친 파격이 아니냐”는 기자 질문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답변이다.

‘파격’. 노 대통령의 새 내각에 대한 수구신문들의 반응은 ‘개혁’ 대신에 이 말로 축약된다. 하긴 그들의 수구성이 ‘개혁’이라는 말을 인정하고 싶을 리 없다. 그래서 ‘40대 여성 변호사 출신 법무, 군수 출신 행자부, 영화감독 이창동씨 문화부 장관 발탁’을 반기는 목소리는 주로 인터넷 상에서나 찾을 수 있다. 구태의연한 과거의 정치인이나 관료들에게선 보기 어려운, 새 장관들의 신선한 행보조차도 개혁이나 반권위주의의 문화 코드로 읽으려 하지 않고 ‘파격’이라는 한 마디 말로 환원시킨다.

반세기 동안 지속된 비정상의 정치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이 파격 없이 가능하다는 듯이, 낡은 정치를 청산하는 것이 파격 없이 가능하다는 듯이, 비정상의 낡은 정치 아래 살찐 수구신문들이 ‘파격’을 앵무새처럼 떠들고 있다. ‘파격인선’ 때문에 공직사회가 술렁거린다면서 은근히 사회구성원들에게 불안의식을 심어주려고 애쓰는가 하면, 한쪽 당사자들의 부정적 반응만을 소개하여 스스로 외친 ‘파격’에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운다. 마치 낡은 우물 속에서 배불리 먹고 살찐 개구리들이 영광스러웠던 과거와 오늘을 견주면서 ‘파격’, ‘파격’하며 개골거리는 듯하다.

이와 같은 수구신문들의 ‘파격’ 논리를 떠받치는 것은 ‘검증되지 않음’과 ‘전문성 부족’이다. 도대체 반 세기 동안 지속된 낡은 정치의 틀 속에서 검증받을 기회를 가진 ‘개혁 인물’이 가능하다는 것인가. 지금까지 검증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낡은 정치에 의해 본디 고귀해야 하는 정치가 더렵혀졌고 이 사회에 정치실종, 정치혐오를 뿌리내렸다는 점이다. 낡은 정치를 혁파하고 정치 본연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선 무엇보다 새로운 정치철학과 가치관을 가진 인물이 나와야 한다. 그런 인물을 통해 오래 전에 행해졌어야 할 검증 과정이 이제 겨우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지체된 데에 수구신문들이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또한 40대 여성 변호사 출신보다 법무에 관해 전문성을 가진 ‘대기자’가 없고, 민선 군수 출신만큼 지방분권의 당위성에 대해 피부로 알고 있는 ‘논설위원’이 없어서일까, ‘전문성’ 운운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것인지 정확하게 짚어내지는 않는다. 오직 깎아내리기 위한 것일 뿐.

공직사회가 흔들린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그렇다면 유럽의 나라들처럼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정권이 바뀌면 그 때엔 공직사회가 온통 뒤집혀야 하는가. 대통령이 바뀌고 정권이 교체되었다고 공직사회가 흔들린다는 것은 그 자체로 공직사회가 국민을 위한 공복이 아니라 정권의 하수인이었음을 자백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권이 바뀐다는 것은 정치철학과 국정지표가 바뀐다는 것일 뿐 공직사회가 흔들릴 이유는 전혀 없는 것이다.

무릇 무능한 자일수록 나이, 허상의 권위, 서열에 기대어 군림하기를 즐긴다. 때때로 시집을 읽는 법무부장관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나라와 국민을 위한 진정한 공복과 정치인이라면 자신의 역사의식과 가치관을 사회에 투영시켜야 한다. 그러자면 우선 이 땅에 뿌리내린 낡은 관행과 권위구조에 몸담기를 거부해야 한다. 또한 새로운 일상세계에 갇혀 가치관의 세계를 상실하는 어리석음을 피하기 위해서 부단히 성찰해야 할 것이다.

파격하고 파격하고 또 파격하라. 저들이 말하는 ‘격’은 다만 낡은 정치의 ‘격’이다. 그것은 국민에 대한 노정권의 약속이다. 아무리 파격해도 ‘경제안정’ 지향 아래에선 한계를 안고 있음에랴.

홍세화 기획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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