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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2.12.29(일)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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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제국과 평화의 촛불광장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모여들었다. 이 땅에 첫 ‘시민의 광장’이 태동하는 순간이다. 지난 6월 ‘붉은 티셔츠’로 물들였던 광장은 아직 ‘시민의 광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광장의 경험은 시민의 광장으로 발전하는 발판이었다. 그리하여, 피지도 못한 채 억울하게 죽은 우리들의 어린 딸들의 죽음을 추모하는 촛불의 행렬은, 월드컵 4강으로 확인된 민족적 자존심과 ‘죽은 자는 있건만 죽인 자가 없는’ 땅 사이의 모순에 대한 분노의 촛불 행렬이기도 하다.

일찍 어두워지는 12월에 촛불은 주위를 밝게 비춘다. 그 촛불은 미군이 주둔하는 나라들에서 주둔군의 지위 협정은 그 내용과 적용에서 주둔지 사회구성원들의 정치사회의식을 반영한다는 점을 인식하라고 요구한다. 즉, 우리가 독일, 일본에 비해 불평등한 소파를 갖고 있는 까닭은 그만큼 우리들의 정치사회의식, 특히 미국에 대한 의식이 낮았기 때문이었다는 점에 대해 성찰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나아가,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세계 속에서 미국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라는 주문, 그것이 촛불광장이 갖는 궁극적인 의미다.

오늘날의 미 제국은 세계 역사상 존재했던 제국과 차별성을 보인다. 가령 로마, 중국, 대영제국 등의 제국들은 그 패권적 영향력의 범위가 전지구적이 아니었고 또 나름의 견제세력이 존재했다. 그 제국들과 달리 미국은 전지구적으로 무소불위의 패권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둘째, 지금까지는 제국들이 각기 주변국들에 비해 군사적 우위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우위에 있었다면 오늘의 미제국은 역사적, 문화적 일천함을 안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적지 않은 유럽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이 점을 지적하면서 지구의 미래가 불안하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의 역사를 관통하는 것은 ‘나와 타자의 관계’를 ‘적대적 선악관계’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곧 미국은 항상 ‘선’이고 타자는 항상 ‘악’이라는 절대적 믿음이 계속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미국이 자랑하는 ‘프런티어 정신’은 인디언의 처지에서 보면 ‘인디언 학살의 정신’이었다. 인디언은 하나님을 믿지 않은 비인간, 지상에서 사라져야 하는 악이었다. 2차대전 당시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 추축국들이 악이었다면, 2차대전 이후에는 지상의 모든 공산주의자가 악이었다.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지에서 그들이 벌인 전쟁놀음들은 모두 ‘공산주의=악’의 등식으로 정당화되었다. 최근 부시의 ‘악의 축’ 발언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나와 타자의 관계를 항상 ‘적대적 선악관계’로 구분해 왔고 이 이데올로기를 발판으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해온 것이다. 할리우드는 이런 미국의 저급하고 조악한 세계관을 그대로 반영한다. 지상에선 모든 ‘악’을 평정했다고 보기 때문일까,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보듯이 이젠 외계인까지 동원하여 그들을 악으로 설정하고 미 대통령이 ‘선’의 화신이 되어 지구를 구출한다고 그린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악의 축’ 발언은 부시 같은 호전주의자의 입에서는 충분히 나올 만한 것으로 놀랄 일이 아니다. 지금도 미 제국은 이라크에 대한 전쟁을 도모하고 있다. 자본주의 세계의 여론은 미 제국 쪽에 편향되어 있어서, 미국에 ‘위협받고 있는’ 나라들이 오히려 ‘위협국’으로 그려지고 있다. 북한이 핵을 둘러싸고 ‘벼랑끝’ 전술을 펴는 것에 대해서도 이러한 상황인식에 기초하여 정확히 바라봐야 한다.

2002년 마지막날인 내일, 우리들은 다시 촛불광장에 모인다. 그것은 단순히 소파 개정을 요구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전쟁도 없고 핵도 없는 한반도를, 그리고 세계를 바라는 시민들의 광장이고 평화의 행진이어야 한다. 그것이 하늘나라에 간 미선이와 효순이의 바람이기도 할 것이다.

기획위원 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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