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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시간 2001년01월21일20시41분

    한겨레/ 사설·칼럼/ 강만길의 역사칼럼
    [역사칼럼] 돌 들기와 가재 잡기

    박정희 정권의 횡포로 해직되었던 전 <동아일보> 기자들이 만든 `동아투위' 25돌 기념식에서 있었던 일이다. 박정희 정권에 저항하여 명동성당 `3·1 구국선언'에 참가했고, 전두환 신군부세력이 정권 찬탈하는 과정에서 조작한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어 갖은 고생을 다한 이해동 목사가 기념사를 하면서, 이상주의자들이 힘들여 역사의 새 나무를 키워놓으면 정작 그 열매는 현실주의자들이 다 따먹는다고 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앞에서 다 해버렸으니 무슨 말을 할 것인가 고심했던 기억이 있는데, 요즈음 우리 현실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이 목사님의 말이 더욱 실감난다.

    이 목사님은 격 높게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를 들어 말했지만, 조금 더 쉬운 말로 하면 힘 들여 돌을 드는 사람 따로 있고 그 덕으로 가재 잡는 사람 따로 있다는 말이 되겠다. 역사라는 것이 반드시 인과응보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는 아니다. 크게 보고 길게 보면 역사는 가야 할 길로 가게 마련이며 또 가야 할 만큼 가게 마련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이 학문으로 성립되어 가르치고 또 배우는 것이라 하겠다.

    해방 후의 우리 역사가 가는 길은 크게 보면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민주주의의 고른 발전과 평화적 민족통일의 진전이라 요약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군사정권 30년 후 성립된 김영삼 정권은 군사독재체제를 청산하고 여러 부문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려 한 면에서, 김대중 정권은 민주주의 발전과 특히 평화통일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면에서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고 후세 사가들이 평가하지 않을까 한다. 다만 김영삼 정권은 신군부와 그 추종세력이 만든 정당과 합당하여 성립되었고, 김대중 정권은 구군부와 그 추종세력이 만든 정당과의 연합으로 성립되었기 때문에 민주주의 발전과 평화통일정책 추진에 많은 제약을 받게 된 것은 사실이다.

    돌 들 생각이 있는 사람들, 즉 역사를 전진시킬 의지가 있는 사람들끼리 힘을 모아 돌을 들지 못하고, 그들이 두 조각이 나고 돌 들 생각이 아예 없었던 사람들과 `야합'해서 돌을 반만큼만 들게 되었고, 가재는 오히려 돌 들 생각이 없었던 사람들이 더 많이 잡는 꼴이 되고 만 것이 아닌가 한다. 들 생각을 가지고 돌을 들게 된 사람들은 가능한 한 큰 것을 높이 들어 국민들에게 많은 가재를 잡게 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사실은 큰 돌을 높이 들지 못했고 그런 상황에서 돌 들 생각이 없던 사람들이 오히려 옛날과 같이 가재의 대부분을 잡는 꼴이 된 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한다.

    훗날의 사가들이 더 객관적으로 또 엄정하게 평가하겠지만 같은 시대를 사는 역사학전공자에게도 서툰 평가가 허용된다면,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의 우리 역사를 돌 들고 가재 잡는 일에 비유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군사정권 30년 후 두 번이나 기대해 볼 만한 돌 듦이 있었다. 그러나 돌 들 의지를 가진 사람들끼리 합심해서 들지 못하고 그 힘이 분산되어 버렸으며, 분산된 힘으로 번갈아 돌을 들기 때문에 돌 들 생각이 전혀 없었던 사람들이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들 생각이 없었거나 오히려 들기를 반대하던 사람들이 끼어서 돌을 들게 되었으니 돌 드는 일 자체가 엉성했고 따라서 큰 돌을 높이 들지 못했다.

    그렇다 해도 일단 돌을 들고 난 다음 가재만은 돌 들 생각이 있었던 사람, 역사를 전진시킬 의지가 있었던 사람, 개혁의지가 있었던 사람들과 국민들이 잡을 수 있어야 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돌 드는 사람 따로 있고 가재 잡는 사람 따로 있는 상황이 되고 말았으며 그런 상황이 앞으로 더 계속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2000년대 이후의 우리 역사가 길을 제대로 잡으려면 지금부터라도 돌 들 생각이 있었던 사람들이 다시 모이고 힘을 합쳐 다음 번의 돌을 들 수 있어야 하며 가재도 그들과 국민이 잡을 수 있어야 한다.

    강만길/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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