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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시간 2000년11월12일21시38분

    한겨레/ 사설·칼럼/ 강만길의 역사칼럼
    [강만길칼럼] 합법 '합방' 주장과 조-일 조약

    며칠 전 서울에서 `과거청산과 21세기의 한일관계'라는 제목의 학술회의가 열렸다. 일본 대중문화 완전 개방, 월드컵 공동개최 등을 앞두고 특히 20세기 전반기의 불행했던 한·일관계를 청산하고 한층 더 우호적이며 전향적인 한·일관계를 수립해 가려는 노력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번 학술회의도 그런 취지에서 열린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논란된 초점의 하나는 역시 `합방'조약의 합법성 여부였다. 조약 체결의 합법 불법 문제를 학문적으로 가리는 일이 필요치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21세기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평화주의자로 자처하는 학자들이 1세기 전에 제국주의자들이 제멋대로 만들어 놓은 그 당시의 국제법을 잣대로 삼아 `합방'이라는 것이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따지는 일 자체가 짜증스럽기조차 했다. 뿐만 아니다. 선열들이 지하에서 다시 분노할 것 같아서 자리를 함께한 일이 후회스럽기도 했다.

    20세기 전반기를 통해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한반도를 지배한 사실을 흔히 식민지배라고 불러 왔지만, 그렇게 부르는 것을 거부하는 학자들도 많다. 사실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한 것은 영국이 인도나 버어마나 말레이시아를 지배하거나 프랑스가 베트남 등을 지배한 것과는 다르다. 그 경우는 서양문화권의 자본주의 선진국이 아직 자본주의를 모르는 이질적인 아시아문화권을 식민지배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같은 문화권에서 그것도 중세시대까지는 문화적으로 뒤떨어졌다고 인정된 지역이 앞섰다고 인정된 지역을 지배한 것이며, 자본주의문화 수준도 그다지 큰 차이가 없는 민족국가끼리의 군사적 강압에 의한 지배와 피지배 관계가 된 것이다. 일본의 한국 지배는 식민지배라기보다 군사적 강점이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합방' 전의 의병전쟁에서 우리 쪽 사상자가 약 5만 명이나 났던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예를 들어보면 일본의 한국지배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이 같은 문화권의 프랑스를 점령한 상황에다 비길 수 있을 것이다. 나치는 프랑스의 친나치 비시정부를 인정했고 일본 제국주의는 35년간 한국인의 자치정부를 허용하지 않았던 차이가 있지만. 서울 천지와 대한제국 황궁을 무장군대로 포위하고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사실을 잘 알면서도 지금 일본의 일부 학자들이 조약체결이 합법적이었다고 강변하거나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옳지 않았지만 조약은 합법적으로 체결되었다”고 궤변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일본의 한국 `합방'이 합법적인 것이 아니었다면 그것은 당연히 군사적 강점이 되고, 그렇게 되면 앞으로 조·일조약 체결 과정에서 논의될 배상은 전쟁배상과 같은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북한당국은 실제로 일제 강제지배 35년간 무력투쟁을 계속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 쪽으로서는 조·일조약 체결 과정에서 전쟁배상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합방'조약이 합법적이었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에 대비한 실증작업이 필요했고 일부 학자들이 그것에 동조하고 나선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강력한 요구를 배경으로 하여 박정희 군사독재정권과 한·일조약을 체결할 때는 일본 학계가 `합방'조약의 합법성을 주장하지 않았다. 일본 제국주의의 괴뢰만주국 장교출신 박정희 정권과의 조약체결 과정에서는 그럴 필요도 없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한·일조약에서는 일본의 한반도 지배권이 1910년 `합방' 때부터 무효인지 1945년 해방 때부터 무효인지 분명히 하지 않고도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항일무장운동세력 중심으로 세워졌고 그 후계세력이 통치하는 북한과의 조약체결 과정에서는 1965년과는 달리 `합방'의 합법성을 주장할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일부 일본 학계의 주장과 같이 `합방'이 합법적이었다면 우리 민족해방운동 전체는 그 합법 통치에 저항한 반역행위가 되고 만다. 설령 제국주의자들이 만든 국제법에 따라 합법성이 실증된다 해도 타민족의 민족해방운동을 반역행위라 규정해놓고 앞으로 그 민족과 옳은 의미의 우호관계를 수립할 수는 있을 것인지, 합법성을 실증하려는 일부 일본학계는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강만길/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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