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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시간 2000년05월28일23시41분

    한겨레/ 사설·칼럼/ 강만길의 역사칼럼
    [강만길칼럼] 누굴 위한 기념식인가

    그 처절했던 광주민중항쟁이 벌써 20주년이 되어 망월동 묘지에서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 참석 아래 기념식이 열렸다. 새로 단장한 뒤 처음 가봤지만 망월동 묘지는 이제 4·19 국립묘지와 함께 우리 민주주의의 영원한 성지가 됐다. 평생을 역사를 배우고 가르치며 살아온 사람으로서 김대중 대통령의 기념사를 들으면서 새삼 역사가 무엇인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광주민중항쟁으로 사형수가 되어 죽음 직전까지 갔던 사람이 20년 뒤에는 대통령이 되어 목이 매이면서 기념사 하는 장면을 보고 `역사는 기어이 가야 하는 쪽으로 가게 마련이구나' `역사의 물결은 결국 흘러야 할만큼 흐르게 마련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사회로 올수록 역사 흐름이 빨라지게 마련이라 해도 시대를 앞서가는 어느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그 당대에 현실화하고 정당화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암울했던 시절의 사형수가 어떻게 해서 불과 20년 뒤에 대통령이 되어 바로 그 역사의 현장에 서서 기념사를 할 수 있게 됐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20세기 전반기에는 다른 민족의 강제지배를 받았고 그 후반기에는 민족 분단과 군사독재 등으로 지체되었던 우리 역사가 20세기를 마지막 넘기는 과정에서 이제 지체됐던 만큼을 만회하기 위해 속도가 더 붙은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념행사의 하나로 전날에는 제4회 동아시아 평화 인권 한국위원회가 주관하는 국제학술대회가 개막됐다. 이 대회에는 160명의 일본·오키나와·대만 등지의 평화·인권운동가 및 학자들이 참가했다. 이들이 한국 참가자들과 함께 기념식 전야제의 횃불 시위에 동참한 것은 뜻있는 일이었다. 특히 일본인 참가자들이 제 나라 `천황'의 한국방문을 반대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한 일이 인상적이었다. 20세기 동아시아가 평화스럽지 못하게 된 장본의 하나였던 일본인들이 21세기 동아시아를 평화롭게 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의 일단이라 하겠다. 사형수였던 대통령의 기념사와 학술회의 참가 외국인들의 횃불 시위, 한 덩어리가 된 시민들의 축제 열기가 광주항쟁 20주년의 바람직한 부분이었던 반면 언짢은 부분도 없지 않았다.

    기념식장 중앙의 대통령석을 중심으로 하여 그 오른쪽 단상에 항쟁 당시의 부상자와 항쟁 관계자들이 앉게 한 것은 당연하다고 해도, 대통령석 왼쪽 단상이 장관·국회의원 등의 자리로 된 것은 보기 딱했다. 그들과 마주 보는 단 아래에는 항쟁 전사들의 유족들이 흰 옷을 입고 앉았고 그 옆에는 각지에서 참가한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민주화운동의 원로들이 앉아 있었다. 민주화운동에 동참했다가 세상이 바뀌어 국회의원 등이 된 사람들은 그래도 윗자리에 앉아 있기 미안해서 잠깐 와서 선배들에게 인사하기도 했지만, 민주화운동 근처에도 안 가보고 장관·국회의원이 된 사람들은 그 단상이 본래부터 제 자리이기나 한 것처럼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버티고 앉아 있었다. 우리 상식으로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들이 앉은 그 자리는 유족들이나 아니면 민주화운동 선배들의 자리여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광주에 갈 때마다 이곳은 좀 다르구나, 유일하게 `해방구' 같은 분위기가 있는 곳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민중항쟁 20주년 기념식장을 마련한 사람들의 상식은 여느 도시와 다르지 않게 관직 우선주의를 벗어나지 못했음이 안타까웠다. 4·19 묘지가 국립으로 격상된 것처럼 망월동 묘지도 당연히 국립으로 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희생자 유족이나 운동참가자들보다 장관이니 국회의원이니 하는 사람들이 윗자리에 앉는 그런 기념식을 하려면 국립 묘지보다 민립 묘지로 되는 게 오히려 5·18 정신을 더 살리는 일이 될 것이다. 광주민중항쟁은 군사통치를 종식시키고 민주주의를 소생시키기 위해 귀중한 목숨들이 바쳐진 피의 제전이었다. 누가 감히 `무임승차' 할 수 있겠는가. 강만길/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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