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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시간 2000년05월07일18시22분

    한겨레/ 사설·칼럼/ 강만길의 역사칼럼
    [강만길칼럼] 정상회담의 역사의식

    분단 55년만에 이뤄진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두고 많은 분석과 논평들이 나왔다. 그럼에도 이번 정상회담 합의가 역사적으로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실무적·구체적 차원을 넘어서 거시적·민족사적 관점에서 보면 무엇을 지향하는 회담이 돼야 하는가, 곧 정상회담이 어떤 역사의식을 깔면서 추진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강대국에 휘둘린 과거 청산

    잘 아는 일이지만 한반도는 그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외세에 휘둘린 경우가 많았다. 솔직히 말하면 근대 이전에는 중국쪽에 예속된 때가 많았으며 근대로 오면서 일본에게 강점당했고, 해방되면서 남북으로 분단되어 한쪽은 중국·소련 세력권에, 다른 한쪽은 미국·일본 세력권에 소속되어 서로 싸우고 대립해 왔다. 6·25 전쟁 때는 남북 두 분단국가 군대와 미국군 중심 유엔군 및 중국군이 이 땅에서 싸웠다.

    통일 목적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는 6·25 전쟁으로도 통일은 안 됐고, 남쪽에서 전쟁통일론 대신 내세운 유엔 감시하 통일안으로도 물론 통일은 될 수 없었다. 그런가 하면 독일식 흡수통일도 불가능함이 실증되고 있으며,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4자·6자회담 하는 것으로도 통일될 것 같지 않다. 전쟁통일, 유엔에 의한 통일, 흡수통일, 4자·6자회담 통일 등이 모두 불가능하거나 어려울 것 같은 상황에서 이제 남북회담으로 통일문제를 풀어가려는 노력이 현실화하고 있다.

    20세기 후반기를 통해 한반도의 분단 상태가 유지된 것은 한·미·일 공조체제와 조·중·소 공조체제의 대립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남쪽에서는 한·미·일 공조체제 통일은 가능할지언정 조·중·소 공조체제 통일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으며, 반대로 북쪽에서는 조·중·소 공조체제 통일은 가능해도 한·미·일 공조체제 통일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북쪽이 한·미·일 공조체제 통일을 거부한 것은 남쪽이 조·중·소 혹은 조·중·러 공조체제 통일을 거부한 것만큼 당연했던 것이다.

    20세기 후반기를 통해 기도된 전쟁통일, 유엔에 의한 통일, 흡수통일, 4자·6자회담통일 등은 결국 한·미·일 공조체제나 조·중·소 공조체제를 근거로 한 통일방안이었으며, 지금 추진되고 있는 남북협상 통일론에서 보면 그것들은 오히려 분단고착 방안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전쟁통일, 유엔에 의한 통일, 흡수통일은 어느 한쪽을 중심축에 둔 통일방안이어서 베트남이나 독일과 다른 지정학적 조건에 있는 한반도의 경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4자·6자 회담 통일방안은 한반도지역 전체가 국제정치상 완전한 화석지대가 될 수 없는 한 불가능한 방안일 것이다.

    20세기 한반도는 통일문제까지도 외세에 좌우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 이 지역도 인구가 7천만명이나 됐고 여러 가지로 주체적 역량이 상당히 성장한 위에, 북쪽은 당장 어렵다고 해도 남북 모두 경제적으로도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민족사회 중에서는 일단 선두그룹에 들었다고 할 수 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남북 모두 20세기적 상황인 한·미·일 공조체제와 조·중·러 공조체제에서 벗어나 남북 공조체제를 이룰 수 있어야만 온전한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으며, 나아가서 동아시아 평화와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민족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민족문제 스스로 해결해야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이제 민족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만한 역량이 갖춰져가는 조건에서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 내부에서 해결해 가는 큰 출발점이 될 것이다. 20세기식 전쟁통일론, 흡수통일론, 외세개입통일론을 모두 청산하고 남북 공조체제를 이루면서 차츰 차츰 통일해 가는 새로운 21세기식 협상통일론을 수립하는 일이 요긴하다. 이번 정상회담이 우리 민족구성원 전체의 역사의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강만길/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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