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주요기사
지난기사

기사검색

  • 편집자에게
  • 광고안내
  • Site Map
  • 신문구독신청
  • 편집시간 2000년04월16일18시18분

    한겨레/ 사설·칼럼/ 강만길의 역사칼럼
    [강만길칼럼] 불발된 평양 음악회

    평양에서 열릴 `2000년 평화를 위한 국제음악회'에 참가하는 67명 일행의 `억지 단장'이 되어 4월3일 베이징으로 갔다. 우리 일행 중에는 세계적 소프라노 조수미씨를 비롯한 저명한 예술인들이 있었고, 지휘자 금난새씨가 인솔하는 외국인도 끼인 음악인들 27명은 연습을 위해 앞서 평양에 가 있었다.

    그날 바로 평양으로 가기로 되어 있던 예정이 바뀌어 베이징에서 하루 묵고 다음날 간다고 할 때까지만 해도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고 가볍게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날 평양행 탑승구까지 가서 하루 종일 기다리다가 호텔로 돌아갔고, 다음날 역시 탑승구 앞에서 종일 기다리다 호텔로 돌아갔다. 그 다음날은 평양행을 포기하고 서울로 가기 위해 또 탑승구까지 갔으나 이번에는 베이징 공항을 짙게 덮은 황사 때문에 비행기가 뜨지 못하고 또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 음악회에 참관하고 평양 일원을 관광한 뒤 돌아 올 예정일이었던 4월7일에야 평양 땅을 밟아 보지 못한 채 서울로 돌아오고 말았다.

    나도 그랬지만 중국 입국사증을 안 가진 일행들이 며칠을 두고 베이징 공항을 들락날락 하면서 중국 공항원들에게 끼친 폐도 컸지만, 그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견디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70평생의 대부분을 분단시대에 살면서 분단민족으로서의 수모도 꽤 겪었지만, 아침 일찍 나가서 밤 아흡시가 되도록 공항 안을 이리 저리 끌려 다니다가 여권까지 회수 당하게 되었을 때는 정말 울분을 참기 어려웠다.

    뒤에 알았지만 우리 일행이 베이징 공항에서 헤매고 있을 때 그곳에서 바로 정상회담 교섭이 추진되고 있을 만큼 남북관계가 좋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왜 음악회가 성사되지 못했는가. 설마 우리들 90여명의 거동이 정상회담을 위해 희생된 것은 아니리라 생각하면서 음악회가 성사되지 못한 원인을 생각해 봤다. 간접적 원인은 남북간의 문화적 차이와 오래 동안 쌓인 상호 불신에 있고, 직접적 원인은 남쪽 사업추진 업체들의 경제적 취약성과 불성실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남쪽의 어느 업체가 북쪽과는 20원의 공연료를 합의하고 10원은 마련해 주었으나 나머지 10원이 마련되지 않았을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남북간의 교류가 잦고 신뢰가 쌓였다면, 또 자본주의사회의 상식으로서는 북에서 10원 어치 공연을 일단 추진하고 남쪽 공연을 할 때 나머지 10원을 마련해 지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상호간 신뢰가 쌓이지 못한 상태에서 사회주의 사회와의 거래에서는 그 같은 자본주의식 신용 거래가 적용되기 어려울 수 있다.

    남북간의 문화 예술 교류를 기획하고 추진하는 업체는 엄선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대기업에게만 맡기거나 창구를 단일화해서는 안 되지만, 남북 사이의 불상사를 없애기 위해서도 문화사업 추진업체의 선정은 지금보다 훨씬 더 엄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의 경우 공연 시기의 결정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북쪽 최대의 명절 태양절이 4월15일이라고만 알았는데, 외국 참가자가 오고 실제 행사가 시작되는 것은 4월8일부터라고 했다. 모르긴 해도 음악회 개최 시기도 북쪽에게는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서울에 돌아와서야 음악회 불발 원인이 공연료 문제로만 좁혀져 발표되었음을 알았다. 공연료 문제가 걸림돌의 하나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주된 이유는 아니라고 확언할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의 합의와 음악회 불발 사이에 함수관계가 있는지 어떤지 모르지만, 베이징에서 북쪽 창구 역할을 하는 책임성 있는 동포 한 분과 단장의 자격으로 마지막 합의한 내용이 있다. 음악회는 무산된 것이 아니라 남북 합의에 의해 연기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여비도 돌려 받지 않았다. 다시 평양에 갈 것이기 때문에.

    강만길/고려대 명예교수



    [Home | 사설칼럼|기획연재|정치|경제|사회|스포츠|국제|증권|문화생활|정보통신|만화|전체기사] []
    copyright(c)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