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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시간 2000년03월26일22시12분

    한겨레/ 사설·칼럼/ 강만길의 역사칼럼
    [강만길칼럼] 한-일조약과 조-일조약

    북한과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본 회담이 다음달 초 평양에서 열린다는 소식이다.

    한-러 관계 정상화가 올해로 10주년이 되고 한-중 관계가 정상화한 지 8년이 되는데, 조-일 국교 정상화 문제가 이제야 약간의 진전을 보이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너무 늦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조-일 조약 체결에는 1965년에 체결된 한-일 조약과 관련해 우리가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가 있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미국의 독촉을 받으면서 국민의 강력한 반대에도 위수령을 펴면서까지 졸속으로 체결한 한-일 조약에서는 35년간 일본이 한반도를 강제 지배한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 어느 부문에도 명기되지 않았다. 다만 그 제2조에서 “1910년 8월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했다. 한국은 그 `이미'가 일본의 한반도 지배가 시작된 시점부터라고 보아 35년간의 지배를 원인 무효로서 불법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반면, 일본은 그 `이미'가 한반도 지배가 끝난 시점부터라 보아 35년간의 지배를 합법적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음은 우리가 다 아는 일이다.

    일본의 주장대로 35년간에 걸친 한반도 지배가 합법적이라면 그 동안에 갖은 고초를 무릅쓰고 치열하게 추진된 우리 민족해방운동 전체가 합법적 통치에 대항한 불법적 행위로 되고 만다. 일본의 한반도 강제지배가 합법적이라면 3·1 운동도 조선총독부가 이름지었던 것처럼 `소요사건'이 되고 만다는 말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괴뢰 만주국 장교 출신을 정점으로 한 박정희정권은 한-일 조약을 맺으면서 35년간의 강제지배에 대한 사과 한마디 유감 표시 한마디 받지 못한 채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한편, 독립유공자 표창을 시작하는 것으로 그 친일 약점을 감추려 했다.

    이제 조-일 조약 체결을 위한 교섭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조-일 조약에서도 한-일 조약에서와 같이 일본의 한반도 강제지배 사실이 명시되지 않고 `이미 무효'라는 식으로 애매모호 하게 얼버무려 진다면, 20세기 전반기를 통해 일본 제국주의가 잔혹한 방법으로 한반도를 강제지배한 사실과 많은 한반도 주민들이 그 강제지배에 저항하면서 민족해방을 위해 싸웠던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 한반도 국가와 일본 국가 사이의 공식적 관계 위에서는 묻혀지고 말게 된다.

    장차 한반도가 통일되면 일본과의 조약도 하나로 되겠는데, 한-일 조약과 조-일 조약의 어느 쪽에도 강제지배의 불법성이 명기되지 못하고 따라서 민족해방운동의 정당성이 확립되지 못하면 영원한 역사 왜곡이 되고 마는 것이다.

    앞으로 체결될 조-일 조약에서는 어떤 형태로건 일본 제국주의의 강제지배 사실이 명기되고 사죄가 표시됨으로서 민족해방운동의 정당성이 확립되어야 하며, 그에 따라서 한-일 조약도 개정돼야 할 것이다. 그렇게 보면 조-일 조약 체결 과정은 한-일 조약을 바로잡는 과정이 되어야 하며, 따라서 그것은 남북 분단국가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민족 차원의 문제 그것이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 일본과 조약을 맺게 됨으로서 역사적 사실을 명시하는 일보다 만약 경제적 추구를 더 앞세우게 된다면, 한-일 조약에서와 같은 과오를 남북이 함께 범하는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다.

    남한 당국이 조-일 조약 체결을 방해하지 않게 된 것은 이제 민족사가 바른 길로 나아가고 있는 분명한 증거라 할 수 있다. 조-일 조약이 한-일 조약처럼 애매하게 되지 않고 역사적 사실을 올바르게 명시한 조약이 되게 하기 위해 남한 당국과 국민들이 진정한 민족적 차원에 서서 외교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도와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이 곧 한-일 조약 개정의 길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강만길/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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