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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시각 2000년01월23일20시34분 KST

    [강만길칼럼] 보수파 자처하는 김선생께

    김 선생.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보수파니 진보파니 하는 말이 예사롭게 쓰이게 되었습니다. 조금 앞서가는 생각을 하거나 남북화해를 말하는 사람이 빨갱이로 간주되던 시대를 살아왔던 사람으로서는 격세지감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우리 나이의 사람들이 아직도 진보적 인물로 간주되는 일 자체에 계면쩍음과 함께 약간의 두려움 같은 것을 느낀다면 그만큼 험하고도 어려운 세상을 살아왔기 때문이라 하겠지요.

    김 선생.

    지난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보수적 인물이나 진보적 인물로 분류되기보다 대체로 반민주인사와 민주인사로 분류되었지요. 솔직히 말해서 요즈음 보수파로 자처하는 김 선생 같은 사람들은 30년 군사독재정권의 핵심세력이거나, 아니면 그 수족이었던 당시의 반민주인사들이 대부분이지요. 이제 반민주라는 오명을 벗고 떳떳하게 보수파로 행세하게 되었으니 김 선생 같은 분을 위해서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김영삼 문민정부는 군사정권의 태 안에서 나왔고, 김대중 국민정부는 또 군사정권의 핵심세력으로 한때 유신본당이라 주장하다가 이제 보수파로 자처하게 된 정치세력과 연합해서 성립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민주세력이 어느새 보수세력으로 탈바꿈할 수 있은 것도 우리의 현실이니, 화가 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김 선생. 반민주인사의 허물을 벗고 보수인사가 되었다면 그 생각과 행동도 그것에 걸맞게 바뀌어야 합니다. 역사가 발전한다는 것은 그 사회의 정치·경제·사회 문화면의 민주주의가 전진한다는 말이고, 보수라는 말의 본 뜻은 이런 역사 발전, 곧 세상이 민주적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아주 막자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 급히 바뀌는 데서 오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조금 천천히 바뀌도록 견제하자는 데 있는 것입니다. 이 점은 김 선생도 잘 알고 있겠지요.

    이해하기 쉽게 국가보안법을 예를 들어 말해 봅시다. 김 선생 같은 사람들의 서슬이 시퍼렇던 군사독재 시절에 국가보안법에 걸렸던 사람들의 대부분이 국가보안보다 정권보안을 위해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김 선생은 그 때도 이미 알고 있었겠지요. 그 사람들이 지금은 대통령도 되고 장관도 되고, 여·야 정치인 혹은 교육자·언론인·법조인 등으로 국가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는데도 악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국가보안법은 아직도 글자 한자 바뀌지 않고 그대로입니다. 김 선생처럼 보수파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옳은 존재 이유는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는 데서 오는 혼란을 방지하는 데도 있지만, 세상의 변화와 역사의 발전을 아주 막는 걸림돌은 치워야 하는 데도 있는 것입니다.

    민주인사였다가 지금에는 진보인사가 된 사람들이 국가보안법을 없애자고 주장한다면, 김 선생 같이 반민주인사였다가 보수파를 자처하게 된 사람들은 아주 없애자고는 못할지라도 세상의 변화에 맞추어 독소조항은 없애자 하는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요. 비흡수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한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하지만, 김 선생의 처지에서는 차마 폐지를 주장하지 못한다 해도 개정하자 정도는 돼야 반민주인사가 아닌 보수파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손도 대서는 안 된다는 것은 보수파가 아니라 다시 반민주인사로 돌아가는 것밖에 되지 않겠지요.

    진보파로 지목되는 사람들이 그 무시무시한 국가보안법은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 만큼 세상은 이미 바뀌고 있습니다. 김 선생은 지금 반민주인사로 되돌아가느냐 보수파로 자리잡느냐의 기로에 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발 자신을 위해서나 민족사회를 위해 반민주인사로 되돌아가지 말고 옳은 의미의 보수파로 자리잡으십시오. 설령 보수파들만이 산다고 해도 세상은 바뀌어야 하고 민주주의는 발전해야 하며 역사는 전진해야 합니다.

    강만길/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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