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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시각 1999년12월31일00시45분 KST

    [강만길칼럼] 일본 '천황제'와 오키나와

    강만길/고려대 명예교수

    지난달 26일부터 5일간 일본 오키나와에서 한국·일본·대만 등 동아시아 세 나라 평화주의자들이 모여 제3회 동아시아 평화·인권 국제학술회의를 열었다. 회의 참가자들이 태평양전쟁 말기의 치열했던 오키나와 전투 유적지를 돌아보았는데, 일본군이 야전병원으로 썼던 동굴에서 우리 일행을 안내한 일본 본토 출신 목사의 제의에 따라 전등을 끄고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서 일행이 묵념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1945년 4월1일부터 석달 동안 계속된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군 약 1만5천명, 일본군 약 6만5천명, 일본쪽 민간인 약 12만명 등 모두 20여만명이 전사했다고 한다. 특히 미, 일 양국의 군인 전사자보다 일본쪽 민간인 희생자가 더 많았으며, 당시의 조선인 희생자가 얼마나 됐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위령탑이 서 있었다.

    일본은 이 전투에서 군인과 민간을 막론하고 전원이 전사하되 결코 항복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옥쇄작전'이라는 것을 벌였고, 그 때문에 2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곳에 가보기 전까지는 패전 위기에 몰린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마지막 발악으로 옥쇄작전이라는 것을 감행했다는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곳 전쟁자료관의 설명문에서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오키나와 전투에서 군인과 민간을 막론하고 엄청난 희생을 내면서 옥쇄작전을 벌인 것은 바로 `천황제'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오키나와 전투 때는 일본이 이미 패전을 눈앞에 둔 시점이었다. 그런데도 군·민을 총동원한 다 죽기 작전으로 미군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주어 이른바 `본토 결전'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희생을 치러야 할 것을 알게 함으로써 미국으로 하여금 체제를 인정하고라도 전쟁을 빨리 끝내는 게 상책이라 알게 하려는 데 오키나와 전투의 목적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알다시피 오키나와 주민은 본래 일본민족이 아니다. 제 민족이 아니라 해서 차별하던 오키나와 주민을 대량 회생시켜 미국에게서 천황제 유지를 받아내려 한 것이 오키나와 전투의 목적이었다는 말인데, 오키나와 현지에 가지 않고는 들을 수 없는 설명이었다.

    미국은 천황제를 유지하기 위해 히로히토 왕을 도쿄 재판의 전범으로 세우지 않았다. 히로히토가 전범이 되지 않은 중요한 이유의 하나는 그가 항복을 결정한 `성단', 이른바 성스러운 결단을 내렸기 때문에 본토 결전을 치르지 않고 전쟁을 일찍 끝내게 됐다는 데 있었다. 그러나 그 성단이란 것이 미쳐 날뛰는 군부의 반대를 누르고 전쟁을 일찍 끝낼 수 있을 만큼 위력 있는 것이었다면 당연히 침략전쟁의 도발부터 막을 수 있어야 했을 것이다. 전쟁 도발 때는 통하지 않았으면서 항복 결정에만 효과를 발휘한 성단 때문에 침략전쟁의 장본인 절대군주가 전범을 면할 수 있었다면 그를 위해서는 더 없는 행운이었다고 하겠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단순한 행운으로만 그치지 않고 일본 제국주의의 죄악상을 호도함으로써 앞으로 동아시아의 역사를 또다시 잘못 되게 하는 데 쓰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미국 통치 아래서 만들어진 전쟁자료관 설명문에는 천황제 유지를 위해 오키나와 전투에서 20만명이 희생됐다고 썼으나, 오키나와가 일본 영토로 돌아간 뒤 새로 만든 대규모 전쟁자료관으로 전시물들이 옮겨질 때는, 그 엄청난 희생이 천황제 유지 때문이었다는 설명을 없애려 한다고 안내한 목사가 분개했다.

    우리 정부가 얼마 전 아키히토 왕을 공식으로 초청했다고 들었다. 자국민의 인정을 받는 국가 원수가 이웃 나라를 방문해 친선을 도모하겠다는 데야 누가 무어라 하겠는가.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일본의 천황제가 지난날 동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파괴한 주범이었음을 잊어버릴 수 없다. 그뿐만 아니다. 오키나와의 그 처참한 희생이 천황제 유지에 목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에 와서 다시 감추려는 움직임을, 그리고 자유주의사관 운운하면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려는 그 작태를 우리는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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