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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시간 2000년05월21일22시47분

    한겨레/ 사설·칼럼/ 황석영의 살아가는 이야기
    [황석영칼럼] 김남주 시인에게

    어언 5·18 광주민중항쟁 20주년이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마음은 개운치가 않다. 봄날은 가고 낙화가 흐트러진 비 온 뒤의 젖은 땅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항쟁의 주체는 더욱 분명해졌지만 가해자와 그 진상은 애매하게 넘어가버리고 아무런 인간적 참회나 사과도 없이 설상가상으로 씁쓸한 지역주의의 상처만 남았다. 이런 상태에서 5·18은 보상이며 묘지며 모두가 어정쩡하게 제도화해 버렸다. 부마항쟁과 광주항쟁, 6월항쟁이 역사의 한 파도이며 굽이였지만 이들에 대한 역사적 의미 부여는 서로 파편화해 버렸다. 망월동 묘지도 5·18묘역과 기타 민주항쟁 희생자 묘지로 분리 제도화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나는 지난 20일에 주위의 벗들과 문인들이 저항시인 김남주의 시비를 세운 행사에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 보냈다.

    오늘 우리가 여기에 세우려고 하는 것은 기념비가 아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에 모인 것은 시인 김남주를 추모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늘 우리가 서있는 이 도시는 축제의 장소가 아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의 이정표를 세우려고 한다

    오늘 우리는 이제 겨우 여기까지 왔다는 마침표를 찍고

    내일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 출발할 것이다

    어제와 같은 바람이 불고 어제와 같은 별이 빛나고

    어제와 같은 달이 진다

    예전과 다름없는 계절의 새들이 노래한다

    시인은 가고 혁명도 사라졌지만

    끊겨진 길은 아직도 우리 앞에 그대로 남아있다

    항쟁의 깃발은 색이 바래었다 깃폭도 세월에 찢기웠다

    모두들 기념하고 모두들 논공행상의 전리품을 챙기며

    모두들 끝났다고 돌아가버린 뒤에

    묘지만 남아서 저희끼리 속삭인다

    우리가 여기 둘로 갈라져서 남은 의미를 저들은 알까

    짐짓 엄숙하게 머리 숙이고 민주주의를 찬양하는

    권력자들이 떠나간 뒤에 아래와 위에서

    묘지 속에 잠든 넋들이 다시 속삭인다

    바로 우리가 이렇게 갈라진 것이

    국토와 같은 몰골이라고

    바로 우리가 이렇게 나뉘어진 것이

    우리를 광주의 울타리에 가두어 둔 것이라고

    바로 우리를 제도의 안팎으로 묶어둔 것이

    혁명을 원천봉쇄한 것이라고

    물봉 남주여!

    너의 말투로 읊조린다

    항쟁은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

    그것은 부자들에게 권력자들에게 양키들에게 아직도 여전히

    짓눌려 있는 코리아의 아시아의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의

    인민들 모두의 것이라고

    이제 시작되어 날로 번창하고 있는 반동의 새세기는

    다만 징후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움직이는 것들은 폭과 높이가

    좌우 상하로 변화할뿐

    스스로 제자리를 찾아 앞으로 나아간다

    기슭으로 기슭으로 몰려가는 파도처럼

    우리는 너의 비를 세워 기념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시 시작한다

    우리는 다시 출발한다

    신사들의 토론과 신사들의 눈부신 헌사를 넘어서

    너와 너의 벗들이 그랬듯이

    항쟁을 완성하는 마지막 새벽에 서려고 한다

    그리고나서 만인의 허수룩한 봉이 되어 주자던

    물봉 그대처럼

    우리는 모든 인민의 물봉이 될 것이다

    그때도 지금처럼 적막했다

    그때도 지금처럼 앞길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 모두 다시 시작이다

    새로운 출발점의 이정표로써

    너는 여기 머물러 있거라

    우리 다시는 너를 추억도 하지 않으련다

    돌아보지도 않으련다

    황석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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