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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시각 2000년02월27일23시00분 KST

    [황석영/살아가는 이야기] 인생을 걸고 작품을 써라

    출판사와 순수 문예지만 하여도 손가락으로 다 꼽을 수 없을만큼 다양하여 그 이름을 다 외울 수 없을 정도며 주간·일간 신문에다 이제는 인터넷 공간까지 생겨났으니, 외형상으로는 문예중흥의 시대라 할만하다. 그래서인지 문인도 많아서 시인의 경우에는 각종 지방지나 동인지에서까지 쏟아져 나와 수천명에 이른다고 한다. 아닌 말로 서울 강남에서는 고급 차를 가지지 않거나 문인 아닌 아줌마는 행세하지 못한다는 농담이 오갈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도 `문학의 위기'라고들 말한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문예지는 한 두 가지 정도였고 그나마 동인지를 겨우 벗어난 것들에 지나지 않았다. 말하자면 등단한지 이십 년이 넘은 중견 시인이 가까스로 첫 시집을 자비 출판하고 친구들과 막걸리 잔을 나누며 울었다는 이야기가 훨씬 보편적인 현실이었다. 원고료란 아예 없거나 그야말로 형식적으로 술 한 잔 값이나 될까말까였는데 그나마도 걸핏하면 떼어 먹히기 일쑤였다. 거기다 군사독재가 유신체제로 굳어지면서부터는 설상가상으로 검열까지 가혹해졌다.

    일례를 들자면 내 작품 중에 <낙타누깔>이란 단편이 있는데 이것의 운명이 기구하여 하마터면 영영 사라질뻔 하였다. 그 작품은 한마디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한국군의 도덕성에 대하여 자아비판을 했던 첫 작품인 셈이었다. 당시 군사정권이 `월남 패망'을 유신의 주요한 핑계꺼리로 내세우고 있었던 터라 문예지 편집진의 자체 검열에 걸려서 `자신이 없다'는 정중한 말과 함께 원고가 되돌아 왔다. 다시 다른 잡지에 갔다가 거기서도 되돌려받는 등 이리 저리 날아다니면서 6개월이 지나갔다. 가톨릭에서 내는 어느 잡지에서는 그래도 검열 당국에 버티는 힘도 만만찮고 발표할 `자신이 있다'고 하여 보냈다.

    그러다 원고료를 받으러 잡지사에 가보니 잡지는 폐간되었고 내 원고는 교정지채로 폐지가 되어 버렸다. 나는 막걸리를 한턱 내기로 하고 화가 친구 하나를 주점에 앉혀 두고 갔다가 붉은 볼펜 자국으로 걸레가 되어버린 원고만 찾아들고 돌아왔던 것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홧김에 원고를 절반으로 찢기 시작했는데 친구가 `내가 화장실에 버리겠다'고 달래는 바람에 그에게 주어 버렸다. 이튿날 술이 깨어 이런 시대의 작가가 될 자격이 없다고 한참 자책 중인데 화가 친구는 테이프로 깔끔하게 붙인 원고를 들고 나타나 주었고, 며칠 후에 역시 나가지도 않는 잡지를 만들고 있던 소설가 이문구가 이 작품을 실어서 단편 하나가 겨우 살아남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나와 내 시대의 동료들은 버티어 나갔다.

    문단 일각의 노력으로 문인들을 돕기 위하여 지난번에 일차로 20억원이, 그리고 요즈음 다시 30억이 지원된다고 하는데 어쨌든 좋은 일이지만 뒷소리들도 많고 어쩐지 석연치가 않다. 유신 때도 그랬고 광주 이후의 엄동설한 같은 시절에도 `보수 근대화' 측에 섰던 문예인들은 아파트다 대출이다 해외여행이다 번역지원이다 하는 갖가지 혜택을 독점적으로 누렸던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말하자면 때가 때이니만큼 과거의 `혜택'과 어떻게 무엇이 다른가 하는 의구심이다. 기왕 문예를 진흥 시키기 위하여 돈을 쓸테면 먼 앞날을 내다보며 써야 할 것이다. 외국식으로 `작가 금고'라도 운영하여 싼 이자로 대출하고 작품을 써서 원고료로 나누어 상환하는 식도 있고, 작고 문인의 가족들에게는 생활 대책을 강구해 주는 식의 구체적인 지원을 할 수가 있다. 누구든 인생을 걸고 작품을 써라. 그래야만 자신의 작품에 대하여 당당해질 수 있다.

    단 솥에 물 붓는 식이 되어서도 안되고 문인 스스로 자조 협동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문화 당국은 백성을 업어 건네주는 정치적 방편이 아니라 다리를 놓는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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