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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시각 2000년02월06일19시37분 KST

    [황석영칼럼] 내년 설에는

    입춘은 절기의 첫 번째에 해당되고 이날부터 봄의 시작이다. 추위와 얼음은 아직 가시지 않아서 겨울의 절정인데 그래도 봄은 오고야만다고 하는 데 깊은 뜻이 있다. 양력이 편리하고 과학적인지 음력이 그 반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요즘도 농어촌에서는 음력과 절기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고 농사나 출어에 참조를 한다. 이를테면 입춘에 하늘이 맑으면 작물이 성한다 라든가, 입춘에 동풍이 불면 풍년 든다는 말 따위가 그런 것이다.

    올해는 더욱 봄을 알리는 입춘 다음 날이 새해 첫날인 설이어서 앞 뒤가 맞는 것같다. 설날 풍습은 세시기에 갖가지로 열거되어 있지만 그 중에서 민간에 가장 보편적인 것으로는 조상에 대한 제사, 세배, 덕담 등이다. 그뿐 아니라 이날은 근신하고 조심하는 날이라고 하여 몸과 마음 가짐을 신중히 했다.

    국민 대부분이 신정 보다는 `구정'에 제사를 지내는 가정이 많고 추석 때와 마찬가지로 솔가하여 귀향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해마다 교통 수단을 강구하느라고 법석이다. 조금 불편하기는 하지만 일년에 한 이틀만이라도 도시 사람들이 고향에 가서 부모형제와 친지를 만날 수 있으니 좋은 일이 아닌가.

    서울에 살적에는 별로 느끼지 못하다가 한때 낯선 남도에 내려가서 살아보니 명절 날은 사람만 왕래하는게 아니라 새로운 소식과 견문과 의식까지 전파되는 날이기도 했다. 신문과 방송에서만 접하던 그럴싸한 인물이 하루 아침에 몹쓸 놈이 되기도 하고 모모한 연예인의 혼사 얘기에서 미국 대통령 집안 얘기로 번졌다가 뉘집 딸내미가 서울 가서 몸 버렸다더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럴싸한 직장이나 학교에 들어간 젊은이들은 부모의 자랑이 되며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어린 동생들의 학비를 대던 처녀는 미담의 주인공이 된다. 그런 중에서도 인상이 깊던 것은 그 고장 출신의 아무개 인사가 알고 보니 서울에 가서 못된 짓으로 이력이 난 사람으로 평가되는 대목이다. 시골 사람들은 대개 가까운 사람들 외에는 속내를 잘 보이지 않는 법이라서 입설에 오른 이를 읍내에서 마주치더라도 겉으로 드러내고 뭐라고 하지는 않으니 본인은 자기 평판을 좀처럼 눈치 채기가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문제는 속내를 뻔히 알면서도 일단 그런 사람이라도 국회의원에 출마를 하고 더구나 한두 번 술잔이라도 대접을 받은적이 있으면 앞의 것은 그야말로 `물타기'가 되어 버린다. 그래도 우리 계 사람인데 타지 것에 비하겠냐, 마땅히 잘난 놈도 없다, 얻어 먹었는데 인정상 어떻게 입을 싹 씻냐, 등등의 어슷비슷한 말로 얼버무린다. 고향에서는 웃고 악수하고 공손하게 인사하고 그랬는지는 몰라도 중앙에 가서는 온갖 흐린 짓을 했어도 뒤엣 것은 말로 치지도 않는다. 어쨌거나 우리 집 아이가 잘 되어야 덕도 본다는 식이다.

    사람을 잡아다 고문을 했든, 양민 학살을 하고 정권을 잡는데 참여를 했든, 온갖 부정부패로 권력 유지를 했든, 다른 지역에 가서 저지른 일은 우리 지역과는 상관 없으니 콱 찍어 준다는 식이다. 그러니 진작에 할 일 많은 나라의 정치 무대에서 사라졌어야 했을 인물들이 끄떡도 없이 오만하게 뱃장으로 버티고 있다. 이런 일들을 생각하면 겨우 여기까지라도 도달한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쩐지 기적처럼 여겨진다. 이러한 어려운 진전은 그동안 `그게 되냐' 라든가 `그놈이 그놈이다' 또는 `정치할 사람 따로 있다' 같은 식의 국민주권에 대한 무책임과 방기에 의하여 더욱 힘겨운 일이었다. 독재와 정치적 폭력이 많은 사람들을 정치문맹으로 만든 까닭이다.

    총선시민연대가 이른바 `음모론'에 의해 묘한 `지역주의'가 전파 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설 연휴에 귀향활동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이제는 각 지역에도 여러 시민단체들이 낙천 낙선 운동에 나서고 있다. 명예혁명이니 하는 거창한 곳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나 한 사람의 소중한 주권을 올바르게 찾아내자. 그야말로 이제는 새 천년의 새 봄이 왔는데 집안 청소도 깨끗이 하고 나라도 대청소를 해야만 한다. 그래서 내년 설날에는 더욱 가능성 있는 미래를 가진 고향으로 찾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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