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
  • 사설·칼럼
  • 해설
  • 정치
  • 경제
  • 사회
  • 국제
  • 증권·부동산
  • 정보통신
  • 문화·생활
  • 스포츠

  • 전체기사
  • 주요기사
  • 지난기사
  • 기사검색
    .



  • 편집자에게
  • 광고안내
  • 서비스지도
  • 신문구독신청
  • .
    편집시각 2000년01월17일00시34분 KST

    [황석영칼럼] 차라리 법을 바꿔라

    내가 칠팔십년대 남달리 향촌의 정적과 평화로움을 좋아하거나 떠돌이 기질이 있어서 이삿짐을 싸들고 지방의 여러 고장으로 돌아다니며 살았던 것은 아니다. 전라도 해남으로 내려간 것이 76년 봄이었을 것이다. 박정희의 유신독재가 노골화해 종신집권을 위한 유신헌법과 긴급조치가 1호에서 9호까지 선포된 때였다. 언뜻 생각나는대로 적어보더라도 3선개헌, 김대중씨 납치, 민청학련 사건, 인혁당 조작 사형, 3·1 민주구국선언 등등 숨가쁘고 절박한 민주와 독재의 싸움이 치열하게 진행되던 시기였다. 당시에는 `민중'이니 `현장'이니 하는 논의가 각계에서 일어났고 많은 청년들이 공장과 농촌으로 하방하기도 했다.

    그때의 시골은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었다. 새마을 운동은 오늘날에 와서는 공과가 드러난 셈이지만, 어쨌든 전국 구석구석까지 독재를 강화하고 산업화를 위한 노동력과 저임금을 뒷받침해주는 기지를 관리하는 수단이었다. 중소농은 몰락하고 빈농과 소작농은 시골을 떠나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났다. 내가 갔을 때만 해도 해남의 일개 면에서 버려진 빈 집이 구십여 호나 될 지경이었다.

    도시에 살 때 보다 한국 사회의 지배구조가 훨씬 투명하게 보이던 것이다. 이른바 시골 유지라는 이들은 대개 일제시대부터 군 면의 관리 또는 경찰 등으로 쥐꼬리만한 권력이나 이권에 가까이 있던 자들이거나 전통 지주의 자식들이기가 십상이다. 농토를 기업 자본으로 바꾼 이들은 대개 도정공장이나 양조장이나 아니면 관과 결탁된 건설 토건업 등을 운영하고 있었고 이들이 국회의원이니 자문위원이니, 그리고 막바지에는 통일주체 국민회의니 하는 감투를 독차지했다. 그리고는 연연세세 그의 친척 동생 아들 손자들이 대를 이어서 해먹는 식이다. 당연한 것이 그들은 해방과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언제나 민중의 반대편에 섰고 어려서부터 대도시로 유학을 나가 높은 교육까지 받고 과거보다 점잖은 직업으로 탈바꿈하거나 근대적인 기업가로 변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거 철이 되면 누가 후보자로 나오리라는 것과 누가 당선되리라는 것까지 이미 결정이 나버렸다.

    해방 후 분단정부가 들어서면서 최초의 선거인 5·10선거가 있었는데 이에 대한 반대로 제주도의 4·3 학살이 일어났다. 나는 그야말로 철부지의 여섯 살 어린이였지만 당시에 입후보자들을 빗대어 조롱하는 노래가 광범위하게 펴졌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거의 잊어버렸지만, `먹고 보자 아무개, 쪽발이 사촌 아무개, 욕심쟁이 아무개…'하는 식으로 노랫가락 형식이었다. 그 때는 아무런 뜻도 모르고 누나와 동네 형들이 부르는대로 따라서 흥얼거렸지만 나중에 우리 현대사를 배우게 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전국민의 90% 이상이 농민이며 이민족의 압제에서 해방된 나라의 가장 절실된 문제였던 토지개혁 입법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그 노래에 나오는 주인공들 덕이었다. 해방에서 전쟁에 이르는 기간 동안에 비극이 더욱 광범위하고 깊숙했던 것은 이 미진했던 숙제가 근본 원인이었다. 남쪽이 파쇼화하고 북은 교조화 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걸핏하면 일방적으로 좌경이니 좌파니 몰아부치는 편리한 잣대가 언제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가는 너무도 뻔한 일이다. 최소한 권력을 잡거나 그에 기생한 자들의 일방적인 잣대였던 셈이다.

    시민단체들이 반개혁적이고 부패한 정치인들의 공천 반대는 물론 낙선운동까지도 벌이겠다고 선포한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진정한 민주국가와 새로운 세기의 가치관을 세우기 위해서도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정치불신과 허무주의는 결국은 독재를 부르고 `보수화'라는 기만적인 파시즘에 이르게 된다. 아무렇게나 뽑아 놓고 정치를 질타하기 전에 우리가 정치를 해내야만 한다. 법이 잘못되었으면 법을 바꾸는게 당연하고 잘못된 법으로 제재하려 한다면 저항하는게 시민사회의 도덕이고 양심이다. 낙선운동은 선진화하기 위한 우리들의 새로운 민주화운동이며 아무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다.


    ↑맨위로


    copyright(c)2000 The Internet Hankyoreh . webmaster@news.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