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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시각 2000년01월10일00시04분 KST

    [황석영칼럼] 우린 너를 보고 깜짝 놀란다

    김수영 시인의 시집을 들추다가 `65년 새해'라는 제목이 눈에 띄어 찾아 읽는다. 그 무렵이라면 나의 청년기였다. 한일회담 반대 투쟁으로 학원가는 조용한 날이 없었고 이듬해에 나는 베트남으로 끌려갔다. 바야흐로 전쟁의 참화와 독재 뒤에 반짝 빛났던 4·19의 태양이 5·16 군사쿠데타의 먹구름에 사라져 버리고 한국식 민주주의가 아닌 파시즘이 사회 전체에 스며들던 무렵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무늬가 달라졌을 뿐 당시의 정치권이 돌아가던 꼴이나 지금이나 별로 차이가 없어 보인다. 기쁨은 잠깐이고 고통은 길다.

    “그때 너는 한 살이었다/ 그래도 너는 기적이었다/ 그때 너는 여섯 살이었다/ 그때도 너는 기적이었다/ 그때 너는 열일곱 살이었다/ 그때도 너는 기적이었다/ 너의 근육은 굳어지기 시작했다/ 너의 근육은/ 학교 밖에서 얻어맞은 모든 것이/ 골목길에서 얻어맞은 모든 것이/ 반드시 정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너의 어린 행동은 어린 상징을 면하기 시작했다/ 너는 이제 스무 살이다/ 너는 여전히 기적일 것이다/ 너의 사랑은 익어가기 시작한다/ 너의 사랑은/ 3·8선 안에서 받은 모든 굴욕이/ 3·8선 밖에서 받은 모든 굴욕이/ 전혀 정당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너는 너의 힘을 다해서 답쌔버릴 것이다”.

    시인은 `너'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20년 전에 한 살이었으니까 그것은 `해방'을 뜻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외세 간섭이 시작되기 전의 분단 이전의 모든 꿈과 희망과 자유와 평등을 의미하는 그것이었다. 이제는 남의 억압을 받지 않고 누구나 똑같이 평화롭게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자던 `한 살'이었다.

    우리가 지금은 다 알고있는 바와 같이 그 소중한 생명은 자라면서 온갖 풍상에 만신창이가 되어 버렸다. 시인이 세상을 떠난 오랜 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꿈을 위해 희생당하고 잊혀졌다.

    밀레니엄이다, 새천년이다, 21세기다 하면서 식자깨나 든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거창하고 원대한 이야기만 한다. 내가 보기에는 이게 다 남의 이야기이고 지난 100백년 동안 잘해먹던 코 큰 사람들 얘기다. 이제 몇밤 자고나면 어김없이 새해가 찾아올 텐데 `새천년 맞이 행사'가 각 고장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다투어 벌어진다고 한다. 사실은 세기라는 개념은 세계사가 서양의 전유물인 기간에 이뤄진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도의 마을에 가보면 3, 4대가 한 집에 사는 일이 흔했다. 아니, 마루에는 조상님의 신주까지 모셔져 있으니 수백년이 한 집안에 사는 셈이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절기와 철을 중요시 했다.

    말하자면 나는 옛날 식이 좋다고 하는 게 아니라 바로 어제와 오늘을 단절없이 생각하고 그것을 현실화 하자는 소리다. 아이엠에프 사태 이후 1200만명의 노동자가 고통을 받고 있고, 결식아동이 20만명에 이르며, 바로 지척에서는 대명천지에 멀쩡한 내 동포가 수백만명이나 굶어 죽었다. 이런 와중에도 누구는 부동산이며 증권이며 투기로 수십 수백억원을 챙겼다고들 한다. 정말, 밀레니엄 좋아하네. 누구를 위한 새천년 축제인가.

    마틴 루터 킹의 말투로 나도 말해 본다. 나에게는 꿈이 있다. 자기 힘과 나아갈 방향을 분명히 알고 있는 우리 민중은 새해에는 반드시 자신과 이웃을 위한 새롭고 혁신적인 당을 만들어 나가리라고. 추상적으로 변해 버린 통일 슬로건이 아니라 통일을 저해하는 분단의 장치들을 제거할 것이라고. 그래서는 국가보안법을 철페하고 평화협정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나에게는 꿈이 있다. 몰라보게 성장한 민중이 스스로의 권력을 쟁취하는 일이 이루어진다는. 시인은 다시 이렇게 노래한다.

    “너의 가난을 눈에 보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가난을/ 이 엄청난 어려움을 고통을/ 이 몸을 찢는 부자유를 부자유의 나날을/ 너는 우리의 고통 보다도 더 커졌다/ 우리는 너를 보고 깜짝 놀란다”

    황석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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