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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5.01.27(목) 22:14

유리집 속에서 살아가기


‘연예인 엑스파일’ 이후 얘깃거리가 늘었다. 연예가 소식에 둔한 이들에게도 톱스타들의 사진과 함께 개인적 특징이 별점으로 매겨진 문서는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대화는 주로 ‘소문’을 중심으로 이뤄졌으니, 당사자들이 분노하고 소송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

연예인 엑스파일 소동은 우리 인터넷 문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문서를 만든 광고기획사를 대상으로 소송이 벌어지고 있지만, 인터넷에선 누구의 책임인지를 두고 논란 중이다. 광고사에 대한 성토에서 시작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반응부터 “광고주도 모델들의 평판에 대한 판단근거가 필요하다”는 논리, “근거 없는 소문이 담긴 파일을 퍼뜨린 네티즌 책임”이라는 주장에 이어 언론의 선정성도 비판받고 있다. 피해자는 명확한데 가해자가 불분명한 상황이다. 숱한 네티즌들의 가담도 책임소재를 따지기 힘들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 10대 90%는 싸이월드에 자신의 방을 갖고 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만든 이가 1200만명을 넘었고 네이버와 다음 회원도 각각 3천만명 이상이다. 이들은 디지털카메라, 엠피3플레이어, 휴대전화 등 최신 디지털 기기를 갖추고 수시로 인터넷에 접속한다. 새로운 문화현상이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문화를 소비하는 주체인 동시에 만들어내는 생산자다.

무엇보다 기록하는 문화가 바뀌었다. 컴퓨터세대가 책을 읽지 않고 글을 쓰지 않는다지만, 지금 젊은 세대는 역사상 어느 때보다 활발한 문자생활을 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끊임없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부족해, 휴대전화로 쉴새없이 편지를 보낸다. 이제껏 기록은 개인적 차원의 일이었다. 언론이나 학술·공무 종사자 등을 제외하곤, 기록은 개인적 용도의 비망록이나 일기 혹은 가까운 이에게 보내는 편지가 다였다.

인터넷 시대에 기록은 개인적 용도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적인 기록으로 썼지만 예상치 못한 순간에 사회적 공유물이 된다. 어떠한 글과 사진도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가는 순간 작성자의 통제를 벗어난다. 상당수는 글쓴이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이용된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누나가 찍은 동생의 몸매 사진은 삽시간에 번졌고, 한 전직 대통령의 손녀가 ‘한국은 후졌다’며 올린 사진과 글에는 요란한 댓글이 줄을 이었다. “술집 접대부 같은 여성 아나운서” 운운한 기자는 ‘블로그는 사적 공간’이라는 논리를 들고 나왔지만, 소송을 피하지 못했다.

개인정보화 도구를 갖춘 영상세대가 사이버 공간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성향은 한마디로 대담무쌍함이다. 사적인 기록과 감상을 공개하는 것은 물론이고 생년월일과 주소·전화번호를 비롯해 가까운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일상까지 기꺼이 공개하고 있는 곳이 많다. 비정상적인 노출증이 의심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애인과 정겨웠던 시절에 올린 사진과 글은, 헤어진 뒤엔 ‘엎질러진 물’이 되고 만다. 엿보기 취향이 없더라도 인터넷에선 너무 쉽게 다른 사람들의 개인적 정보와 마주친다. 젊은이들이 미팅에 나가기 전에 상대방 홈페이지를 통해서 기본적 탐색을 하는 것도 흔한 일이다. 다른 사람들의 신상정보만을 캐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찾아보면 자신의 일상적 단편이나 개인정보도 사이버상에서 만나게 된다. 동창회나 동호회 등이 주요 유출경로다.

사적인 기록을 비롯해 세상의 모든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곧바로 만인의 공유물이 될 수 있는 세상인데, 이를 다루는 사람들의 의식과 사회적 제도는 달라진 세상을 따라가지 못한다. 연예인 엑스파일도 이러한 문화지체 현상에서 비롯했다. 인터넷은 모든 게 노출되는 유리집을 짓고 사는 것과 비슷하다. 커튼으로 가려야 할 곳도 있고, 강화유리를 덧대야 할 부분도 있다. 속이 들여다보여 멋지고 신비로운 유리집은 깨지기도 쉽다. ‘유리집에 사는 사람은 함부로 돌을 던져서는 안 된다’는 서양 속담이 있다. 남을 향해 함부로 돌을 던지면 결국엔 자신이 위험해진다는 게 유리집 살이의 철칙이다.

구본권 온라인뉴스부장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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