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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12.14(화) 19:31

북-일 관계와 축구


축구경기에서 흔히 쓰는 표현 중에 ‘공은 둥글다’는 말이 있다.

공이 어느 방향으로 굴러갈지 알 수 없듯이, 승부의 향방을 예측하기 어려움을 표현하는 말이다. 3월31일 몰디브 말레국립경기장에서 벌어진 한국과 몰디브의 2006 독일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전 같은 경기가 이 표현에 가장 어울리는 보기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국제축구연맹(피파) 순위 22위였던 한국대표팀은 90분 내내 일방적인 경기를 펼치고도 142위였던 몰디브의 육탄 방어에 막혀 0-0으로 비기는 수모를 당했다.

‘공은 둥글다’는 표현은 전혀 다른 의미이지만, 축구의 정치·사회적 효과를 말할 때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선수가 공을 마음먹은 쪽으로 보낼 수 있듯이, 축구가 선수나 관전하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평화의 도구로도 적대의 도구로도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축구가 적대 도구로 쓰인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는 8월7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일본과 중국의 아시안컵 결승전이라고 할 수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계속된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댜오위타이열도를 둘러싼 영토분쟁에 불만을 품은 중국 관중은 이 경기를 반일 시위장으로 만들었다. 중국 선수들도 심판 판정의 불공정을 이유로 준우승 메달 시상을 거부하는 등 관중의 반일 분위기에 기름을 부었다. 경기 뒤 일부 관중은 일본 선수단이 탄 차와 일본 대사관 공사가 탄 차를 공격하는 폭력을 저지르기도 했다. 축구를 정치에 악용한 추한 장면이다.

반면, 축구가 평화와 화해에 공헌한 보기도 많다. 한국과 터키가 맞붙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 3~4위 결정전은 세계 축구사에서도 보기 힘든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했다. 당시 두 나라 선수들은 치열한 경기가 끝나자마자 서로 어깨를 겯고 운동장을 돌며 우정을 과시했다. 이 때문에 터키에서는 한국 사람에 대한 감정도 좋아지고 한국의 기업들이 장사하기도 좋아지는 효과도 얻었다. 1997년 11월1일 한국과 일본이 잠실운동장에서 맞붙은 98 프랑스월드컵 최종 예선전도 대립과 갈등의 한-일 축구사를 화해와 협력의 역사를 바꾼 경기로 꼽힌다. 당시 한국은 이 경기와 관계 없이 월드컵 4회 연속 출전이 확정된 상태였고, 일본은 한국을 반드시 이겨야 월드컵 진출의 불씨를 살릴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경기는 일본이 2-0으로 이겼다. 일본 쪽이 감격한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그들을 정말 감동시킨 것은 경기 결과가 아니라 한국 응원단 ‘붉은악마’가 잠실경기장 관중석 상단에 내건 ‘함께 가자, 프랑스로!’라는 펼침막이었다. 일본 축구계 인사들은 지금도 이를 ‘11·1 충격’으로 부르며 눈물을 글썽일 정도다. 이 경기가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 성공의 출발점이 됐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9일 치른 2006 독일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의 조 추첨에서 불행인지 다행인지 북한과 일본이 같은 조에 편성돼 출전권을 다투게 됐다. 북한과 일본의 첫 경기는 내년 2월9일 일본의 사이타마경기장에서 열린다. 교환경기로 열릴 두번째 경기는 6월8일 평양의 김일성경기장에서 벌어질 예정이다.

그런데, 현재 북-일 관계가 말이 아니다. 일본인 납치문제를 둘러싸고 극점까지 치닫던 양쪽의 갈등이 납치 일본인 잔류 가족의 귀국으로 호전되는 듯하더니 최근에는 가짜유골 송환 문제가 불거지면서 긴장이 다시 팽팽해지고 있다. 심지어 일본 쪽의 대북 반감이 처음 납치사건이 불거졌던 2002년 9월17일 북-일 정상회담 직후보다 더욱 악화됐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런 분위기에서 원정경기를 치러야 하는 북한 선수들의 심정은 더할 나위 없이 착잡할 것이다. 특히 재일동포 출신으로 북한 대표팀에서 활약하는 안영학·리한재 두 선수의 마음 고통은 가늠할 길이 없을 것 같다. 다행히 고이즈미 총리는 10일 북한과 일본이 같은 조에 든 것에 대한 감상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2월은 미묘한 시기지만, 정치문제로 망치게 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축구를 정치와 연계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환영할 일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일본 응원단 ‘울트라 닛폰’이 사이타마경기장에 ‘함께 가자, 독일로!’라는 펼침막을 내거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나만의 꿈일까? 북-일 축구대결이 평화의 도구로 쓰일 것인가, 적대의 도구를 사용될 것인가? 그 열쇠를 쥐고 있는 쪽은 먼저 안방에서 손님을 맞는 일본이다.

오태규 스포츠부장ohta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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