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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11.14(일) 21:05

미국 대선의 교훈


3판“지금 팔루자에선 화약냄새와 주검이 썩어가는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다. 유령의 도시다. 격렬한 교전이 잠시 멈추는 사이, 정말로 불길한 침묵이 간간이 도시 전역을 감싼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떠났다. 거리는 텅 비어 있고, 상당수 집들도 주인을 잃었다. 아직도 팔루자를 지키고 있는 주민들에겐 피난민이 남겨놓고 떠난 빈집이 피난처가 되고 있다.”

이라크 팔루자 현지에 남은 유일한 서방언론사 통신원인 영국 <비비시>의 파딜 바드라니가 13일 전한 미군 공격 이레째를 맞은 그곳의 상황이다. 미군 공식발표로도 이번 작전기간에 미군과 이라크군 수십명과 1000여명의 이라크 저항세력이 숨졌다. 민간인들의 희생은 집계조차 안 된다. 적신월사 대변인은 의료진과 의료장비가 사실상 전무한 팔루자 상황은 “재앙” 수준이라고 말한다.

미국이 요란하게 ‘(이라크 해방) 작전 완수’를 선언한 지 20개월이 지난 지금 본격적인 이라크전이 다시 시작되고 있는 것 같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20개월 전의 승리선언에 대한 아무런 반성도 없이 그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언론 앞에 나와 팔루자 공격 소식을 전하는 모습에 분노와 모멸감을 느낀다며 개탄했다. 그러나 프리드먼은 자신처럼 좀더 나은 이라크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이제 미국에서 소수파로 전락했음을 통렬히 자각한다. 지난 2일의 대선에서 미국 일방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조지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이 완승을 거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방주의가 아닌 상호존중의 세계질서를 원했던 세력의 지지를 받은 민주당은 왜 패배했는가? 많은 사람들은 그에 대한 답을 부시의 브레인 칼 로브의 전략에서 찾는다. 로브는 “서로 다른 문화적 코드를 가진 사람들을 적대하게 만드는 전략으로 철저하게 미국을 분열시켰다”는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도덕적 비난은 잠시 제쳐놓고, 이미 나이 9살에 케네디 대신 닉슨을 지지하고, 70년대부터 보수주의 세력 결집에 앞장서온 그가 21세기를 공화당 장기집권시대로 만들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최우선적으로 관심을 기울인 것이 핵심 지지층 결집 전략이었고, 그 전략은 2000년 이후 세 차례 선거에서 공화당이 연승한 결정적 요소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보수세력들은 이런 미국 선거의 교훈을 발빠르게 수용하고 있는 듯하다. 중도보수를 지향한다는 기독교와 법조인 운동단체들이 속속 결성되고 있고, 보수적 가치의 전도사를 자처하는 조갑제씨 등은 인터넷 사상투쟁을 선언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에 맞서는 진보진영, 특히 현 집권층의 움직임은 지리멸렬하다. 반대세력의 눈치보기에 급급해 지지층을 결집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떼밀어내고 있다. 그 결과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지지율 하락이다. 최근 <동아일보>가 결과의 일부를 은폐했다 하여 논란이 인 코리아 리서치 조사에서도 노무현 정부나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은 20%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보수언론의 주장처럼 개혁의 과잉 탓이 아니라 개혁의 미흡에 대한 실망 때문이었음이 곧 확인된다. 같은 조사에서 향후 바람직한 국정운영 방향을 묻는 질문에 ‘진보적으로 가야 한다’(51.8%)는 의견이 보수나 중도적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의 갑절이 넘고, 진보진영에 대한 가장 큰 비판이 ‘말만 앞서고 실천이 없다’(70.8%)는 점이란 사실이 그를 뒷받침한다.

실제로 열린우리당이 의회의 과반수를 점한 뒤 반년이 넘었지만 눈에 띄는 개혁 성과는 찾아보기 어렵다. 4대 개혁법안도 소리만 요란했지 진전이 없고 국가보안법 문제에선 물러설 뜻까지 밝혔다. 민생과 관련된 문제는 또 어떤가? 새로 도입하려는 종합부동산세도 구멍이 숭숭하고 비정규직 보호법안이라고 내놓은 게 비정규직 양산법안이다.

이래서는 현정부나 열린우리당에 미래가 없다. 자신들이 어떤 기반 위에 서 있는 정당이고 정부인지를 깨닫고 미국 대선의 교훈을 되새길 때다.

권태선 부국장 kwont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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