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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5.06.02(목) 21:21

일본의 야스쿠니 숙제


“에이(A)급 전범은 더이상 죄인이 아니다.”

모리오카 마사히로 일본 후생성 정무관이 최근 자민당 의원모임에서 한 ‘망언’이다. 그는 “일본은 경제봉쇄로 어쩔 수 없이 전쟁에 내몰렸다” “전쟁에서 승자가 정의, 패자가 악은 아니다” “극동국제군사재판은 점령군의 일방적 재판으로, 국제법 위반이다” 등 공적인 자리에선 금기처럼 여겨져온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야스쿠니 참배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우이 중국 부총리에게 ‘바람맞은’ 것이나, 자민당 간사장이 ‘내정간섭’이란 말을 꺼냈다가 중국이 윽박지르자 철회하는 수모를 겪은 데 격분한 나머지 튀어나온 수준을 넘는 발언이다.

그러나 전범이니 전범재판이니 하는 용어를 ‘용도폐기’한 지 오래인 일본 우익들에겐 모리오카의 견해가 ‘상식’에 속한다. 자민당 참의원 간사장은 “모리오카와 같은 의견은 국민들 사이에 많이 있다”고 거들었고, 총무회장도 “에이급 전범이라는 딱지는 외국에서 붙였을 뿐 우리가 낙인찍은 것은 아니다”라고 맞장구쳤다.

우익의 ‘말석’쯤 되는 모리오카에겐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공자님 말씀’까지 들먹이며 어쭙잖은 변명에 급급한 고이즈미가 안쓰러웠을 것이다. 고이즈미는 “부전의 결의를 다지기 위해”라거나 “나라마다 전몰자를 모시는 방식이 다르므로”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었으나 피해국엔 씨알도 먹히지 않는 얘기다.

좀더 세련된 변명은 일본의 사생관을 들먹이는 것이었다. “일본에선 나쁜 사람도 죽으면 부처님이다. 죽은 사람은 구별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일본 문화에 밝지 않은 사람들에겐 그럴싸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또한 생뚱맞은 것이다.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는 최근 펴낸 〈야스쿠니 문제〉를 통해 그 허구성을 파헤쳤다. 그는 야스쿠니에선 일왕을 위해 목숨 바친 군인·군속 등에게 제사를 지낼 뿐, 억울하게 희생당한 민간인이나 옛 막부군, 내전 때 반정부군의 위패는 안치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죽은 이들을 평등하게 다루는 게 아니라 국가의 정치적 의지로 ‘선별’한다는 것이다.

우익들은 애초부터 전범을 인정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1951년 전승국들과 샌프란시스코조약을 체결했으므로 전범재판의 결과를 수용할 뿐 정당한 재판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야스쿠니 관계자는 에이급 전범 합사 이유로 “조약 이전 전투상태일 때의 군사재판에서 처형됐기 때문에 전장에서 숨진 이들과 마찬가지”라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다.

우익들은 조약 발효 직후부터 에이급을 포함한 전범들의 사면·복권을 신속하게 추진했다. 53년 국회는 전범과 일반 전몰자의 동등한 대우를 결정했고, 후생성이 전범도 ‘공무’로 죽은 것으로 인정함으로써 야스쿠니 합사가 시작됐다. 이들에게 남은 일은 야스쿠니가 다른 나라 국립묘지에 버금가는 위상을 갖도록 하는 작업이다. 그것이 국민을 대표한 총리의 야스쿠니 공식 참배다.

때문에 야스쿠니 참배 여부는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한 인식을 일본인들에게 묻는 문제다. 전직 총리들이 고이즈미의 참배 자제를 한목소리로 요청하기로 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리긴 했지만, 일본에선 주변국과의 외교마찰 방지 차원에 국한된 논의가 대부분이어서 안타깝다. 직업군인의 아들로서 야스쿠니를 가면 왠지 유전자를 자극받는 느낌을 받는다는 일본 언론의 한 칼럼니스트는 “왜 우리는 일본의 진로가 걸린 이런 중대한 문제를 전쟁이 끝난 지 60년이 되도록 내버려두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박중언 도쿄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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