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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5.01.20(목) 20:09

일본과 협상할 기회를 마련해야


한-일협정 관련 문서 5건의 공개로 나라가 온통 떠들썩하다. 당시 정부가 보상금 명목으로 돈을 받아 극히 일부만을 피해자들에게 지불한 만큼 나머지 문서 공개를 요구하는 목소리와 함께 피해자 개인들의 피해보상 문제에 관한 정부 책임을 묻는 여론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나 일본 정부나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피해보상을 목적으로 배상소송을 청구하는 등 법적 해결을 위해 일본군 위안부, 징병ㆍ징용 피해자, 원폭 피해자들은 그들의 요구사항을 어떤 형태로든 구체화할 것이다. 한국 정부가 국무총리 산하 민간 공동위원회를 구성해 그 대비책을 강구하려 하고, 정치권에서는 국회 진상조사특별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데 납득이 가는 조처다.

문제는 일본 정부의 태도다. 그들은 더 이상 문서를 폭로하면 자기들도 맞서 문서를 공개하겠다는 태도로 나오고 있다. 물론 그들이 공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문서는 그들 입장을 대변해주는 유리한 문서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문서가 공개됨에 따라 개별보상의 문제가 한국 정부의 책임임이 명백해졌다고 강조하면서 한국에서의 언론보도나 여론을 애써 무시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일본의 언론도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문서 공개를 단행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한 군사정권의 문제점을 밝힘으로써 민주정권의 정통성을 국민에게 어필하려는 목적”이라는 기사와 함께 문건 폭로 과정을 소개한 마이니치신문의 기사 외에는 짤막하게 사실을 보도할 뿐 특별한 논평이 없다.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을 경계하는 기색이 여실히 엿보인다.

여기에서 정부와 정치권에 주문하고 싶다.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국내에서의 보상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해결책을 하루속히 강구함과 동시에 일본 정부를 설득하는 노력도 경주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근본적인 재협상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추가협상 등 그들과 여러 경로를 통해 협상할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당시 일본은 한-일협정 테이블에서 일제 식민지 지배에 대한 죄과를 배상하려는 ‘청구권’자금으로서가 아니라 ‘경제협력’자금으로 지원한다는 사실을 명백히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 후 줄곧 징병ㆍ징용 피해자나 일본군 위안부 등의 보상 요구에 대해서는 한-일협정으로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모순된 변명으로 일관해 왔다. 이는 일본이 협상을 통해 청구권 문제를 완전히 소멸시키지 못했음을 증명한다.

한-일협정에서 우리가 완전히 보상을 받지 못했고, 보상받을 여지가 아직 남아 있다고 한다면 당연히 우리는 독일의 선례를 일본 정부에 강조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도 한국에 대한 일본의 배상 문제가 충분하고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았다고 보는 견해가 존재하고 있음도 상기시켜야 한다.

예컨대 19일 히로시마 고등법원이 원심을 깨고 미쓰비시중공업의 히로시마공장에 강제로 끌려갔다가 피폭을 당한 우리 근로자들에게 손해 배상 판결을 내린 사실이 그것을 분명히 입증해주고 있지 않은가. 대법원 판결이 남아있기는 하나 이는 1심 재판부의 판결을 뒤엎는 양심선언으로 일본은 한국에 아직 빚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법적 판결 아니겠는가.

또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민단체 참가자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한-일협정 문건에 원폭 피해자와 위안부 피해자가 포함되지 않았다고 집회를 열어 주장했는데, 정부에서는 모든 문건을 일시에 공개하지는 못할망정 신속히 관련 문서를 공개하고, 원폭 피해자와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그 협정사항에 포함되지 않았다면 당당히 일본 정부에 보상을 청구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이렇게 된 바에야 양국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단체의 노력도 절실하다 하겠다. 이런 민감한 문제일수록 이해관계가 얽힌 정부 측보다 양국 민간단체가 서로 협력하여 피해자들의 기금 조성에 나선다거나 대안을 마련하여 정부 측에 건의해 활로를 뚫는 경우를 종종 본다. 양국 민간단체나 양심세력이 연대를 모색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라 생각된다.

정말이지 모두들 지혜를 모아 슬기롭게 대처할 시기이다. 이 기회를 통해 더욱 성숙한 한일관계가 정립되길 기대한다.

김정훈/전남과학대 교수ㆍ일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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