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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5.01.11(화) 20:41

환경, 무주군 내도리의 경우


1968년, 나는 무주군 내도리에 있었다.

내도리는 금강 천리길 수변구역 중 경관이 가장 빼어난 곳이다. ㄹ자로 휘돌아져 가는 강의 자태가 뛰어나기도 하거니와 강을 둘러싸고 연접한 산세도 수려하고, 특히 200여 미터에 이르는 하천 폭에 담긴 수만평의 하상초원은 그야말로 생태계의 보고라고 할 만하다. 그것은 수천, 수만년에 걸쳐서 물과 산과 기후와 살아 있는 것들이 서로 부딪치고 서로 화해하면서 마침내 가장 아름답고 이상적인 조건으로 결합되어 만들어진 하나의 ‘작품’이다. 그곳에 있을 때 나는 불과 스물셋의 피 뜨거운 젊은이였으므로 때로는 ‘갇혀 있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자연이 주는 놀라운 은혜 때문에 돌이켜보면, 그때가 오히려 지금보다 풍성했다. 내가 무주를 ‘문학적 자궁’이라고 느끼는 은혜의 반은 내도리의 자연에게서 받은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오랜만에 내도리에 들렀다가 나는 망연자실했다. 200여 미터 드넓은 하천폭 가운데로 볼썽사나운 제방이 뻗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익산지방국토관리청에서 국가예산 260억원을 들여 수해방지 사업으로 시작된 공사라 했다. 무주 군민들이 누대에 걸쳐 소풍 나오고 했던 하상초원은 자갈과 토사를 긁어다가 둑을 쌓느라 처참하게 파헤쳐졌고, 꼬마잠자리, 여울벌레, 반딧불이가 살던 배후습지도 내장을 드러낸 짐승처럼 무참히 까발겨졌을 뿐 아니라, 비가 오면 강바닥이 될 하상에다가 오히려 강폭을 터무니없이 좁히면서 쌓아놓은 제방인지라, 주위의 수려한 산세와 아름다운 강풍경을 단번에 모두 망치는, 그야말로 목불인견의 제방이 아닐 수 없었다.

세상에, 국가 주도의 이런 무지막지한 자연파괴가 어디 있는가. 치수사업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나 같은 사람도 명백히 잘못 설계된 치수사업이란는 걸 한눈에 알겠는데, 도대체 전문가들이 포진하고 있을 국토관리청은 장님인가. 내가 듣고 본 바, 내도리 마을은 누대에 걸쳐 거의 침수피해가 없었다. 태풍 ‘루사’나 ‘매미’가 휩쓸고 갈 때에도 내도리에선 일부 전답의 침수피해가 약간 있었을 뿐이다. 게다가 침수피해를 예방한다면서 오히려 강폭을 대폭 줄이는 설계라니, 소가 웃을 일이다.

나는 분노를 느꼈다.

더욱 더 화가 나는 것은, 많은 지역 환경단체들이 앞다투어 문제점을 지적해 국토관리청의 상급기관에서도 이미 이 공사의 오류를 알고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공사는 계속 추진 중이다. 지금이라도 ‘외양간’을 고치면 그만큼 국가예산의 낭비를 줄일 수 있으련만, 오류를 인정하는 게 싫어서 마침내 ‘게’도 ‘구럭’도 다 잃을 심산이다.

20세기 미국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진 자연주의자 스코트 니어링은 그의 자서전 <조화로운 삶>에서, 자신이 평생 농장을 가꾸고 살면서 유일하게 ‘실패’했던 일이 있다면 ‘제방을 쌓아 물을 막는 일’이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물은 자연스럽게 제 길을 좇아 흐를 권리가 있다. 산이 있으면 돌아 들고 풀과 나무가 있으면 그 뿌리를 적시면서 품 안에 온갖 살아 있는 것들, 사람살이까지 품어준다.

우리는 그동안 하천의 직선화에 많은 예산을 쏟아부었다. 수천, 수만 년에 걸쳐 이상적으로 결합된 자연적 조건을 시멘트 수백톤으로 바꾸려는 인위적 상상력은 결국 우리 사람살이의 터전을 망가뜨릴 뿐이다. 더구나 내도리의 경우 같은, 단순하고 무모한 공사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내도리의 자연은 무주군민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것이다. 한번 망가뜨리고 나면 돈으로도 회복시키지 못할 소중한 자연재산을 지금, 나랏돈으로 망치고 있다. 솜뭉치로라도 가슴을 칠 일이다.

박범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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