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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4.12.15(수) 19:46

핵폐기장에 대한 총리의 독선


12월17일 정부는 핵폐기물 처분장을 결정하기 위해 이해찬 총리 주재로 253차 원자력위원회를 연다. 원자력위원회에서는 과거의 정부 방침인 중저준위와 고준위 통합 핵폐기물 처분장 건설 계획을 바꿔 중저준위만을 처분하는 핵폐기장 계획을 확정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만약 원자력위원회가 이를 통과시킨다면 많은 사회적 희생을 치른 부안에 이어 2005년에도 핵폐기장을 둘러싼 사회적 충돌은 불가피할 것 같다.

정부 주장의 근저에는 2008년 울진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핵폐기물이 포화되기 때문에 핵폐기장을 서둘러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중저준위 핵폐기물은 방사능 오염 정도가 낮아서 크게 위험스런 물질이 아니므로 주민들이 불안해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를 덧붙였다. 이해찬 국무총리가 직접 중저준위와 고준위 폐기물 처리의 분리 논거를 만들어서 특유의 뚝심과 독선으로 공무원들을 독려하고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무려 20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핵폐기물 처리 정책이 온전히 해결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정부는 지난해 안면도, 굴업도에 이어 반민주적이고 밀실 야합적인 방식으로 부안에 핵폐기장 선정을 강행하려다 주민들의 거대한 저항으로 말미암아 사실상 핵폐기장 추진이 불가능하게 되자, 올해 초 산업자원부가 환경단체와 대화기구 구성을 제의했다. 대화의 신뢰성과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는 당시 추진하고 있던 핵폐기장 유치 일정을 중단해야 마땅했다. 그런데도 산자부는 7개 지역의 핵 폐기장 유치청원을 독려하고 받아들였다. 대화를 제의한 한편으로 핵폐기장 일정을 그대로 강행하는 정부의 이중적인 태도에 대화를 통한 해결을 기대했던 환경단체들은 에너지 민간포럼을 탈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열린우리당 국민통합위원회(위원장 이미경 의원)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정치적 중재에 나섰다. 5~6차례 비공개 실무회의에서 상호 첨예한 갈등을 조정하여 정부의 핵폐기장 일정을 중단하고 1년간의 전문적인 검토를 통해 핵정책과 핵폐기물 정책을 수립하는 ‘사회적 공론화 기구’를 구성하여 국민적인 합의를 도출하자는 것이었다. 정부의 핵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갖고 있었던 핵발전소 지역의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은 심각한 우려와 염려 속에서도 갈등을 종식하고 파국을 막자는 취지 아래 이 제안을 수용하였다. 20년 동안 대립과 갈등으로 얼룩지고 지역 공동체를 파괴시킨 핵문제가 그 어려움을 딛고 공개적인 공론의 장으로 옮아가는 역사적인 순간이 오는 듯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취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해찬 국무총리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중저준위 폐기물과 고준위 폐기물을 분리 처분해야 한다는 논리를 앞세워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장은 정부의 방침대로 추진하고 공론화 논의에서 제외하겠다는 것이다. 어렵사리 합의한 내용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이해찬 총리는 절차적으로 당과 정, 환경단체가 합의한 정신을 한순간에 무시하고, 의제를 제한하고 논의를 축소하는 대화방식을 주장하고 있다. 국가 행정의 최고 책임자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비상식적이고 비민주적인 독선을 펴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정부가 종전과 별다를 것 없는 핵정책과 핵폐기장 정책을 통과시키기 위한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거수 과정인 국가 원자력위원회 회의만이 남아 있다. 이해찬 총리가 스스로의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혀 핵폐기장 추진을 강행하려 한다면 부안에 이어 또 한번의 충돌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지혜로운 길을 선택하길 촉구한다. 시간은 충분하다.

박진섭 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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