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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시간 2001년02월22일15시58분

    한겨레/ 사설·칼럼/ 특별기고
    [서울돋보기] 병역 대체 봉사 제도를/박노자 경희대 교수

    서기 295년 로마제국에서 살던 막시밀리아누스는 “남을 죽이지 말라”는 십계명과 예수의 가르침 대로 남을 죽이는 군인이 되는 것보다 하나님을 위해 제국의 칼에 죽는 길을 택했다. 그뿐 아니라 많은 초기 기독교인들은 전장에 나가서 살인하는 것을 거부해 순교를 택했다. 물론 뒤에 기독교는 국교화하면서 교인의 참전 문제에서 국가와의 타협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세의 상무적 분위기에서 남자의 참전은 당연시되었지만, 문예 부흥기, 개신교 등장 이후 기독교의 평화주의가 보편적으로 인식돼 퀘이커와 같이 군역을 원칙적으로 부인하는 종파도 생겼다. 잇따른 세계대전에 지쳐 평화의 소리가 높던 유럽에선 양심적 병역 거부권이 기본인권으로서 공식적으로 인정됐다. 종교·도덕적인 이유로 무기를 접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병역의무보다 더 오랜 기간동안 보조간호사나 호스피스 봉사자 등 고된 봉사를 함으로써 병역의무를 대신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자비정신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다면 국가와 사회에 자비를 실천하라는 논리다.

    한국의 전통종교인 불교에서도 `남의 생명을 끊지 말라'(불상생계)뿐 아니라 `살생 도구를 보관도 하지 말라'(불축살생구계)가 있다. 한국에서도 도저히 살생 도구를 잡을 수 없는 이들을 위해 병역 대체 근무제를 도입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 제안에 대해 즉각 반론이 나올 것이다. 첫째, 국가에 대한 충성을 최고의 사회적 가치로 여겨온 한국에서 서양적 개인주의로 보일 수도 있는 양심 병역 거부권이 가당키나 하냐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서양보다 한국에서 더 많이 쓰이는 민족주의와 애국주의, 그리고 `신성한 국방 의무'라는 개념들은 원래 서양에서 생긴 것들이다. 중세는 물론 근·현대 서양도 개인보다 민족과 국가를 중시해 왔고, 이의 극단적 표현이 독일의 나치정권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세계 전쟁의 무의미한 살상과 나치나 스탈린 정권의 일찍이 없던 국가를 위한 대학살 등을 경험한 서양은 `국가를 위한 살인을 거부할 권리'를 기본권으로 생각하기에 이른 것이다. 분명히 역사의 진보다. 따라서 일제에 의해 억울하게 징병으로 끌려가고, 해방 뒤에도 동족끼리 죽고 죽이는 참극을 겪고, 독재자의 명령으로 광주시민을 학살해야 했던 한국 군대의 비극 등을 경험한 한국 사회도 개인에 따라선 국가를 위한다는 미명 아래 자기 양심을 저버릴 수만은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민주사회에서 인간의 양심과 선택권보다 더 신성한 것은 없다.

    둘째로는 북한과의 대결상황에서 국민의 군사적 정신을 이렇게 약화시켜도 되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수령님'을 거의 신으로 모셔야만 하는 불행한 동족들에게, `자유 국가의 시민이 군역을 거부하여 사회봉사를 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커다란 충격을 주고, 새로운 각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투쟁과 증오, 그리고 복종의 가르침만 들었던 그들이 인간애와 자비가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의 자유의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처음으로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체제의 우월성'이라는 말이 타당하다면, 병역·사회봉사간의 자유선택은 진정한 의미의 우월성과 자신감을 과시하는 것이다.

    셋째, 군부대 대신에 병원으로 가서 일할 수 있다면, 누가 군대에 가겠느냐는 반론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똥오줌 냄새를 맡으며 죽어가는 노인이나 환자를 간호하는 것은 결코 쉽게 견뎌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전근대적인 복종을 중시하는 대기업들이 어차피 군대에 갔다 온 사람을 무조건 선호할 것이란 점을 감안하면, 대체 근무의 선택이 출세에 대한 희생을 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국처럼 군사문화에 젖은 사회에선 대체 근무제가 도입되더라도 의식 있는 소수만의 선택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소수의 권리를 존중해주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가 아닌가.

    자비와 박애의 본성을 가진 한민족들의 땅에서, 살인을 거부하는 양심적인 사람들이 더이상 불필요한 고통을 받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박노자 경희대 교수

    (주:윗글은 1999년10월05일 한겨레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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