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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 국민 여러분!”/ 손석춘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대통령의 목소리였다. 카랑카랑 금속성이다. 예고를 듣고 온 국민이 텔레비전 앞에 모였을 때다. 살천스레 `특별선언'이다. “헌법을 일시 중지하겠다.” 국민 모두의 절실한 염원을 받들었단다.

그랬다. 그해 오늘이다. 1972년 10월17일. 겨울공화국은 우리를 기습했다. 헌정 파괴였다. 더 큰 충격은 한달 뒤에 왔다. 사실상 총통제를 만든 유신헌법이 투표율 91.9%, 찬성률 91%로 통과됐다. 우매한 국민의 선택이었을까. 아니다. 찬성으로 여론을 몰아간 주범이 있다. 언론이다. 선포에서 투표까지 한달 내내였다. 신문과 방송은 줄지어 유신찬가를 읊어댔다. 선포 바로 다음날 <조선일보>는 `기쁨'으로 반긴다. “앞으로의 영광스러운 삶을 얻기 위하여”란다. 같은 날 “대통령의 충정을 충분히 이해”한 <중앙일보>는 “국민은 경거망동을 삼가라”고 경고한다. 국민을 상대로 집단 세뇌가 이어졌다.

언론개혁을 논의할 때 꼭 독자의 선택을 내세우는 윤똑똑이들이 있다. 국민을 무시하느냐며 고리눈을 치뜬다. 새퉁스레 엘리트주의자라고 삿대질이다. 자칭 `반엘리트주의자'들에게 묻는다. 절대다수가 찬성한 유신체제도 과연 국민의 선택으로 존중해야 할까. 더 있다. 민주시민을 학살한 전두환의 피묻은 헌법도 압도적으로 찬성했다. 만일 그 때 어느 한 신문사라도, 어느 한 방송사라도 진실을 말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따라서 문제는 다시 언론이다. 바로 그 언론이 오늘 서부렁섭적 `비판언론'을 자처하며 독자 선택권을 부르짖고 있다. 심지어 언론개혁운동은 국민을 계몽하겠다는 발상으로 국민 모독이란다. 언죽번죽 국민 선택을 강조하는 그들의 노림수는 무엇일까. 예나제나 `우매한 국민'이다. 모든 것을 `국민 선택'에 맡기고 아무도 민주화운동을 벌이지 않았다면 아직 이 땅은 정치군부가 지배하고 있을 터이다. 1980년대 후반에 한 신문사의 고위간부는 서슴없이 공언했다. “신문은 독자를 중3수준으로 여기고 만들어야 한다.” 비단 그만이 아니다. `몽매한 국민'은 언제나 기득권세력의 `소신'이자 소망이다. 실제로 신문권력의 지면을 보면 수구세력이 국민을 뭘로 생각하는지 뚝뚝 묻어난다.

언론자유가 탄압 받고 있다고 한나라당·자민련의원 56명이 결의안을 냈다. 그들은 신문도 읽지 않는 걸까.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모든 대의원에게 검거령을 내리고, 시늉뿐이던 재벌개혁마저 시나브로 포기한 김대중 정권을 빨갛다고 색칠하고 있지 않은가. 말살에 쇠살인 정치모리배의 사상공세도 볼맞아 대문짝만 하게 1면에 보도하지 않은가. 언론자유를 깜냥껏 누리며 마치 이 나라가 저들의 왕국인양 여론과 정치를 농단하지 않은가. 합법적으로 뽑힌 대학 총학생회장단마저 사상을 이유로 마구 구속하는 `공화국'에서, 국회의원이라는 자들이 탈세범의 언론자유를 부르대며 나라의 국제적 위신을 개탄하는 풍경을 보라. 소가 웃을 일이다. 정작 국제적 망신은 누가 자초하고 있는가. 언론사주들과 56인의 `투사'들이다. 그만하면 됐다. 제발 16대 국회가 더이상 국가와 국민을 우롱하지 않길 바란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내면세계는 아직도 국민을 우민화하는 유신체제가 지배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얼마 전 56인 가운데 5·16쿠데타 주역은 박정희 생가를 찾았다. `처숙 부모 영전'에서 짐짓 엄숙하게 말했다. “어른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를 이제 좀 아는 것 같다.” 도대체 국민 알기를 무엇으로 아는 걸까. 중학 3학년생에 대한 모독일지 모르지만, 국민을 중3으로 얕잡지 않는 한 감히 꿈꿀 수 없는 풍경화다.

민주언론인과 민중이 애면글면 벌이는 언론개혁운동 앞에서 국민을 억압해온 세력이 국민 선택권을 내세우는 것은 고약한 희극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저들의 조롱을 받아야 하는가. 하여 묻는다. 혹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 우리를 `친애'하고 있지 않을까. 저 어둠 속에 똬리 틀고 카랑카랑 금속성으로 이렇게 말하면서.

“중3 국민 여러분!”

손석춘의 여론읽기/ 여론매체부장s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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