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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2.10.01(화)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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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파렴치한가/ 김동민


김대업씨로부터 직접 얘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지난 여름 한 언론운동단체의 회원수련회에서였다. 그가 찾아온 이유는, 신문들의 왜곡 보도와 극심한 인격모독을 경험하면서 이곳을 찾아 하소연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문들은 그의 ‘병풍’ 관련 폭로 내용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를 인격파탄자나 파렴치범으로 몰았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과오를 모두 시인하면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아들 정연씨의 병역비리 의혹을 폭로하게 된 배경을 담담하게 설명했다. 자신의 파렴치한 행위에 사랑하는 딸이 정신적 충격을 받아 학교도 다니지 못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는 것을 보면서 감옥에서 결심했다고 한다. 부끄러운 과거를 청산하고 병역비리 근절에 앞장섬으로써 딸에게 떳떳한 아버지로 거듭나기로 결심하게 됐다는 얘기다. 그의 말과 행동의 진실성 여부는 차차 검증될 일이다.

김씨가 파렴치한 전과자이기 때문에 그의 어떤 말도 믿을 수 없다는 일부 신문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면책특권을 악용하여 한탕주의식으로 무책임한 폭로전을 일삼은 ‘전과’가 적지 않은 국회의원들의 말은 믿을만 한가 실정법을 어기지 않은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무조건 믿고 대서특필하며 의혹을 부풀려도 되는가

의혹이 있는 곳에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언론이 그것을 보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다. 누가 어떤 배경에서 어떤 의도로 무슨 내용의 의혹을 제기했는지, 얼마나 비중을 두고 보도해야 할지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선정적으로 무조건 키워서는 안 되고, 어느 정도 신빙성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된다. 무엇보다도 사실관계 확인이 필수적이며 후속 보도로 국민의 궁금증을 해소시켜주어야 한다.

한나라당의 엄호성, 이성헌, 김문수, 이재오 의원 등이 연일 터뜨린 ‘북한에 4억달러 전달 의혹’에 대한 신문들의 보도를 보자. 이 의혹을 연일 1면 머릿기사로 다룬 신문은 조·중·동 외에는 없다. 다른 신문들이 기사가치 판단을 잘못해서 이렇게 중요한 사실을 조심스럽게 다루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정감사를 활용한 정치공세 ‘의혹’이 있으며, 폭로 내용의 사실 여부에 대한 판단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폭로 내용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을 볼 때, 이들 1등, 2등, 3등 신문이 기사가치 판단을 잘못했거나 한나라당의 정치공세에 편승했다는 새로운 ‘의혹’을 갖기에 충분하다고 하겠다. 확인되지 않은, 그리고 확인 노력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정치공세성 폭로 내용으로 '소설'을 쓰면서, 게다가 그것도 기사라고 연일 1면 머리에 올리는 신문을 우리가 언론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자전거라도 덤으로 주어야 구독해주는 것은 아닐까

사설에서는 의혹을 기정사실화하는 단계로 발전한다. ‘남북정상회담에 뒷돈 거래라니’ ‘현대 대북지원 실체 밝혀라’ ‘대북지원 과연 떳떳한가’(이상 <중앙일보>), ‘4억달러 퍼주고 정상회담했나’ ‘금감위원장 때문에 못밝히나’(이상 <동아일보>), ‘한반도 김·김 뒷거래설 밝혀라’ ‘뒷거래설에 정부는 왜 말이 없나’(이상 조선일보) 등이다. <중앙일보>의 사설이 가장 단정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일보>는 말한다. “진실 규명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정부가 그럴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는 데 있다.”(9월28일자 사설 ‘회계장부·계좌 추적 왜 안하나’) 그렇다면 묻는다. 기자들은 그럴 의지를 갖고 있는가 기자에게 진실 규명은 그리 어려운 일인가

언론비평 전문지 <미디어 오늘>에 따르면, 정당을 출입하는 한 일간지 기자가 “한쪽에선 국회의 진흙탕 싸움을 세세히 전해 이를 부추기면서 또 한쪽에서는 진흙탕 싸움을 비난하는 모습을 볼 때 개인적으론 언론이 파렴치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대업과 국회의원, 그리고 조·중·동. 정작 파렴치한 이는 누굴까

김동민/ 언론개혁시민연대 집행위원장·한일장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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