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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2.08.13(화)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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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팔리는 여론/ 강준만


소비자운동 단체가 그럴 만한 이유를 내세워 특정 상품 불매운동을 벌이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시민운동 단체가 그럴 만한 이유를 내세워 특정 신문 절독운동을 벌이는 것에 대해선 고개를 갸웃거린다. 심지어 언론 개혁을 원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그런 방식엔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왜 그럴까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신문은 일반 상품과는 달리 `가치 상품’이라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써 봤더니 어떤 공산품에 어떤 문제가 있다거나 그 공산품을 만든 회사에 이런 문제가 있으니까 그 공산품을 사지 말라고 호소하는 것에 대해 불쾌하게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치 상품’의 경우엔 다르다. 자신이 선택한 `가치 상품’의 문제들을 지적하면 자신의 지성과 자존심이 무시당하는 걸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가치 상품’에 대한 선택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문제는 신문이 과연 `가치 상품’으로 여겨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지금 일부 신문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벌한 `경품 전쟁’은 무엇을 말하는가. 자전거·선풍기·전화기·밥상 등과 같은 경품으로 신문 구독을 결정한다면, 그래도 신문을 `가치 상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그건 일부 독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나올 법 하다. 그러나 그간 여러 차례 이뤄진 조사 결과는, 독자들의 주된 신문 선택 기준이 더 이상 `가치’가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있다. 자본력이 강한 신문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기능적인 것들이 주요 선택 기준이다. 신문을 전화와 같은 가치중립적인 매체로 이해하면서 `가치’보다는 `영향력’에 더 주목하는 지식인들도 많다.

오늘날 우리가 실시하고 있는 여론 민주주의의 원리로 볼 때에 일반 시민들의 신문 선택 행위는 투표 행위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깊이 따지고 들면, 신문 선택 행위는 투표 행위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투표에 의해 선출된 공직자는 여론의 구속을 받기 때문이다. 즉, 어떤 인물들이 고위 공직을 맡느냐 하는 것보다는 어떤 여론이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문은 여론을 반영한다기보다는 여론을 제조한다. 신문이 여론을 반영하는 면이 없진 않지만, 그것마저도 신문 자신이 갖고 있는 특유의 색깔에 의해 채색된다. 영향력이 크다고 평가되는 신문들의 색깔은 소위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추종하거나 타협해야 할 중요한 지표로 간주된다. 그런데 그런 신문들의 영향력이라는 것은 사실상 자본력으로 사들인 결과다. 지금 우리는 여론이 돈에 팔리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거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가 그러나 유권자들을 돈이나 향응으로 매수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짓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돈으로 신문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건 민주주의와 무관한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강하다. 심지어 그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당한 판촉 행위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론을 매수하는 데에 앞장서는 신문들은 선거관리위원회가 `공정한 후보선택’을 위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며 그 무능을 호되게 비판해왔다. 그러나 그들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정한 신문선택’을 위해 조금만 신경쓰려고 해도 펄펄 뛰면서 '언론탄압'이라고 외쳐댄다. 그들의 그런 공세에 주눅이 든 탓인지, 아니면 돈에 팔린 여론의 눈치를 보는 것인지, 공정거래위원회는 신문 시장에 대해서만큼은 고개를 돌리고 있다.

지금 일부 신문들간의 `경품 전쟁’이 1996년 여름에 발생했던 살인 사건이 또 일어날 정도로 살벌하다는데, 사람 목숨 살리기 위해서라도 공정거래위원회가 용기를 내야겠다. 자신의 소중한 `여론 1표’를 돈에 파는 사람들도 다시 생각해보자.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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