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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2.07.02(화)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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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신문과 ‘노풍’/ 강준만


최근 ‘노무현 바람’이 가라앉은 것에 실망한 노사모의 일부 회원들이 인터넷을 통해 노무현 후보에게 준 애정어린 고언들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어법상의 차이만 있을 뿐 수구 신문들의 노 후보 비판 내용과 똑같은 게 많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일부 노사모 회원들마저 ‘노무현 죽이기’를 시도하는 수구신문들의 영향력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이기’라는 표현에 대해 마땅치 않게 생각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수구 신문들의 노 후보 관련 보도와 논평은 그것 이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 만큼 불공정의 극을 치달아 왔다는 걸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노 후보에 관한 한 수구 신문들의 영향력이 거의 없다는 미신을 굳게 믿고 있는 것 같다. 수구신문들의 ‘노무현 죽이기’가 영향력이 없다는 건 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이라는 드라마가 상영될 때에만 국한된 것이다. 드라마가 끝나고 관객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는데, 왜 그들의 영향력이 없단 말인가?

또한 드라마 상영 중에 시도된 수구 신문들의 ‘노무현 죽이기’는 주로 노 후보의 ‘색깔’에 집중된 것이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색깔’ 공세는 대립 구도가 선명한데다 그 음모성이 잘 드러나기 때문에 기존 정치에 염증을 내고 개혁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반면 ‘행태’의 문제는 전혀 다르다.

드라마 종영 이후, 노 후보와 민주당은 이미 성공을 거둔 드라마의 인기를 계속 끌고 갈 수 있는 이슈 제기에 실패했다.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던 노 후보의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연대 시도만 하더라도 일의 선후가 바뀐 어리석은 자충수였다.

노 후보의 그런 시도에 대해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사실은 수구 신문들의 노 후보 비판 내용과 개혁·진보 진영의 노 후보 비판 내용이 거의 똑같았다는 점이다. 나는 여기서 무서운 ‘시너지 효과’(상승 효과)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본다.

만약 노 후보의 그런 시도가 탄탄한 명분과 논리로 이슈를 먼저 제기하고 그걸 공론화한 뒤에 이루어졌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적어도 노 후보의 ‘행태’가 집중적인 비판의 폭격을 맞는 최악의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최악의 지역주의에 큰 책임이 있는 김 전 대통령에게 반성과 ‘결자해지’의 기회를 주자는 명분론으로 접근했더라면 그런 시도의 실패에 대해선 김 전 대통령이 파렴치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후가 뒤바뀐 노 후보의 시도는 김 전 대통령으로 하여금 정략적인 이해득실을 따지게끔 만들었고, 이슈는 실종된 가운데 노 후보가 김 전 대통령에게 허리를 굽힌 각도와 선물받은 시계를 자랑하는 게 이슈 아닌 이슈로 등장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당시 수구 신문들의 노 후보 폭격엔 “무슨 신문에 칼럼을 쓰건 옳은 말만 하면 된다”는 소신을 갖고 있는 개혁적인 지식인들까지 가세하였고, 이후에도 이와 같은 양상은 계속되었다. 이로써 수구 신문들의 노 후보 비판은 기존 ‘수구 대 개혁’의 전선을 뛰어 넘어 예전의 영향력을 다시 회복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노풍’이 가라앉게 된 가장 큰 책임은 노 후보 자신과 민주당에게 있지만, 한국의 정치 개혁과 공정한 경쟁을 원하는 사람들이 지금 수구 신문들에게 보이고 있는 무관심과 아량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언론 개혁 없이 정치 개혁이 가능하다고 믿는, 지나치게 이기적이거나 지나치게 순진한 사람들의 각성 없인 그 어떤 개혁 시도도 한순간의 바람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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