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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3.04.20(일)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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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러리 방미 안되길/ 안병욱


테러에 인류가 공분하는 것은 인명 살상을 볼모로 삼는 야만이기 때문이다. 대량살상무기를 거부하는 것도 무차별적인 살상으로 인류평화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은 사담 후세인 한 명을 제거하기 위해 저렇게 엄청난 살상과 파괴를 서슴없이 자행해 인류를 테러나 대량살상보다 더한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막상 테러 배후세력이라는 후세인은 최후의 순간에도 화학무기 같은 것은 사용하지 않았다.

다음달 노무현 대통령이 그런 미국을 방문한다고 한다. 이것이 이라크전 승리를 축하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기를 바란다. 미국은 이라크 점령으로 한껏 고무되어 있다. 전쟁을 시작하기 전 유엔을 통한 명분 쌓기도 실패했고 전통적인 우방인 프랑스와 독일이 끝까지 이라크 침략을 반대했다.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는 물론 캐나다까지도 부시 대통령의 침략정책에 반대했다. 이렇게 사면초가인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손쉽게 손에 넣고 미국민 다수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니 기분이 우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고조된 자리에 다소 비판적인 것으로 평가받던 한국의 새 대통령이 지지자로 방문하게 되었으니 분위기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화기애애하리라 예상된다.

하지만 이번 노 대통령의 방미는 몇가지 우려스러운 점을 안고 있다. 우선 대내외적으로 크게 비판받고 있는 미국의 침략주의에 들러리 서는 모양새다. 그리고 여중생 압사사건을 계기로 제기된 지난 1년간의 반미운동 성과를 원점으로 되돌려버릴 가능성이 크다. 또 이라크 침략을 통해 거칠 것이 없어진 미국 강경파들의 위세에 휘둘려 북한 문제를 그들의 입맛대로 용인해주고 말지 모를 일이다.

이미 노 정권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이 시작되자 곧 이를 지지하고 나섰다. 이로 말미암아 최소한 지난 1년간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건 싸움은 한낱 광풍으로 치부되고 말았다. 이라크의 파멸로 전쟁이 손쉽게 종결되자 덩달아 파병 결정이 옳았던 것처럼 내세우기도 한다. 빨리 끝날 전쟁에 굳이 파병하는 까닭은 오직 강자 미국에 아첨함으로써 국익으로 포장된 기득권을 보장받기 위함이었다. 어이없게도 지도층 일각에서는 미국의 200년 동맹국들도 외면한 일에 우리가 앞장서 지지하고 파병한 점을 생색내면서 공치사를 늘어놓기도 한다.

미국의 침략행위는 지역단위 공동체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세계사 흐름에 제동을 걸려는 의도를 지녔다. 세계사는 19세기 이래로 제국주의 약탈전과 세계대전 그리고 냉전으로 이어진 엄청난 시련을 겪은 이후 마침내 21세기 지역공동체 중심의 평화체제를 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평화와 공존을 향한 새로운 세계체제는 제국주의 망상을 버리지 못한 섬나라 일본, 영국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와 함께 세계 유일 패권국의 지위를 확보한 미국의 이해와는 어긋나는 일이다. 그만큼 미국은 한반도를 발판으로 동아시아로의 진출을 더 강력히 추진할 것이다.

이제 당분간은 가공스러운 파괴력을 앞세운 미국의 군사력이 세상을 이끌어 갈 형국이다. 그 여세로 미국의 북한 폭격은 언제라도 가능해진 임의적인 선택사항이 되었다. 북한이 염려하는 것은 미국이 북핵 문제를 다자간의 논의를 통해 국제화하고, 이어 유엔 결의를 내세워 이라크처럼 무장해제를 요구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 염려 때문에 북한은 한사코 미국과 북한 양자의 협의를 통해 해결할 것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설령 미국이 불가침 조약을 맺고 핵무기 불사용을 약속하더라도 그 협약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이라크 침략으로 분명해졌다.

지금 북한은 인접국가들 사이에 협동하는 것만이 미국의 횡포를 막는 길이라 판단하고 북·중·미의 다자간 대화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남한은 미국을 추종하면서 파병을 통해 미국의 패권주의를 돕고 있다. 북한은 이를 용납할 수 없기 때문에 대화 상대에서 굳이 남한을 배제한 것이다.

미국의 패권전략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노 대통령을 환영하는 소리는 높아지겠지만 그만큼 남북한의 거리는 멀어질 것이다.

안병욱/가톨릭대 교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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