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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3.04.13(일)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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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예산공개 한다면…


‘투명성’이라는 말이 다시 유행이다. 국내의 한 인터넷 검색기에서 ‘투명성’이라는 낱말을 치면 2만1300여개나 나온다. 최근 에스케이글로벌의 천문학적 금액의 분식결산이 큰 사회파장을 일으키는가 하면, 국무회의록 공개, 고위직 공무원의 판공비 공개가 주요 개혁의제로 채택되고 있다. 심지어 꽃동네 비리 시비도 재정과 회계의 비공개에 원인이 있다.

기업의 분식결산이 문제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오너 한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지배구조, 외부 감사인의 독립성 미확보, 불투명 회계에 대한 제도적 방지장치, 시장규제 미흡이 거대한 부실·분식결산을 낳았다. 어느 기업이나 분식결산은 마치 관행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 ‘외환위기’가 초래되었다. 당시 국제통화기금(아이엠에프)이 한국 정부에 대해 분식결산의 해결을 강력히 요구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2001년 1월 프라이스 워터하우스 쿠퍼스(PWC)에서 발표한 ‘경제 불투명성 지수’를 보면 우리나라는 35개 조사 대상국 중 31위로 중국, 러시아, 인도네시아, 터키 다음으로 불투명성이 높은 나라로 나타났다. 문제는 아직도 경제의 암적 요소인 이런 분식결산이 뿌리뽑히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 예산이나 정책결정, 집행과정 역시 투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여전히 정부 예산의 수립과 집행은 오리무중이다. 판공비 문제는 그 중의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동안 시민단체들이 손잡고 전국적으로 그물을 만들어 중앙정부 기관은 말할 것도 없고 자치단체장에 대해 판공비 공개운동을 벌임으로써 부분적으로 판공비가 공개되어 왔다. 그러나 예산집행의 비공개는 결국 부실과 낭비, 부패를 가져오기 마련이었다. 한 시민단체가 ‘밑빠진 독 상’을 제정해 운영하는 것은 이런 상황을 희화적으로 보여준다. 더구나 나라의 가장 중요한 정책들이 논의되고 결정되는 국무회의록조차 제대로 작성·공개되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투명성이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증언해 주고 있다.

정부가 제대로 모든 것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기업이 모든 장부를 조작 없이 작성하도록 하는 일은 이 정부가 강력히 추진하려는 정책의 하나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기관이나 기업이 투명성을 최고 가치로 삼고 실천하도록 권장하고 강제하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청와대가 솔선수범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 스스로 예산을 국민 앞에 공개한다면 다른 기관들이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대통령의 한끼 식단이 어떻게 구성되고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대통령의 판공비는 얼마이며 어디에 쓰이는지, 대통령의 외국 여행에 얼마의 비용이 어디에 쓰이는지 남김 없이 드러낸다면 납세자로서의 국민, 한 집안의 살림을 살아가는 주부들도 분명히 감동할 것이다. 청와대가 모든 살림살이를 공개하는데 어떻게 다른 정부기관이나 기업이 자신의 살림살이를 공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투명성은 우리 시대의 최고 화두다. 맑게 하면 모든 것이 저절로 해결된다. 햇빛이 밝게 비치는 곳에 독버섯이 자랄 수 없다. 투명성이라는 햇빛 아래에서 부조리·부패·비효율·불합리·비상식이라는 독버섯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투명성은 반부패와 동의어로 쓰인다. 우리의 어려운 경제상황이나 사회인식의 단계를 말하면서 투명성에 바탕을 둔 개혁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다. 지금까지의 관행을 일시에 바꾸는 것은 큰 고통과 후유증을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시기에 우리 사회의 투명성을 높이는 제반 개혁을 온전히 하지 않고 언제까지 미룰 수 있겠는가. 그 고통은 알을 깨고 부화하는 고통이며, 껍질을 벗고 새로운 희망을 만드는 일이다. 다시는 아이엠에프 위기를 맞지 않기 위해서라도 투명한 회계, 투명한 예산, 투명한 사회를 이루는 데 청와대부터 발벗고 나서야 한다.

박원순/변호사·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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