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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3.03.09(일)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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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국사 과목 통합을


지금 책상 앞에 두 종류의 책을 펼쳐놓고 이 글을 쓴다. 한 편은 우리 교과서들이고, 다른 편은 프랑스 교과서들인데, 교과목명은 양쪽이 똑같이 `역사’이다. 임의로 프랑스어 책을 비교대상으로 선정했지만, 예컨대 영국이나 독일의 교과서들도 별로 다르지 않기 때문에 프랑스편을 표본으로 해도 좋을 것이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무엇보다 이 외국 책들을 나 혼자만 보고 싶지 않다. 몇몇 전공자들이 책장에 꽂아두고 말기에는 너무 아깝다. 교과서 연구재단에서도 국내외 자료를 수집하고 열람하도록 배려하고 있지만, 여러 학부모들에게 책 구경을 하시라고 거리에 나가 직접 책들을 펼쳐놓고 싶다. 외국어로 된 서술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눈으로 지면 구성과 페이지 수, 색채 사진과 도표를 봐주시기만 하면 된다. 다른 설명이나 화면으로는 실감나지 않을 터이며, 실물을 보고 차이를 확인하는 일이 필요하다.

우선 하나의 차이는, 우리 교육체제에서는 역사교과서를 ‘국사’와 ‘세계사’로 구분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사 따로 세계사 따로 가르치고, 수능시험에서 세계사는 국사와 동등하게 대접받지 못한다. 그런데 프랑스 교과서를 보면 프랑스사에 비중을 더 두긴 하지만 이름 그대로 세계사가 역사이다. 교재 구분은 국사와 세계사가 아니라 시대에 따를 뿐이다. 예를 들면, 1789년 프랑스혁명기로부터 1차세계대전 이전까지가 한 권이고, 다른 한 권은 1914년 1차세계대전 발발부터 나치즘과 경제공황 시대를 다룬다. 그리고 나머지 한 권은 1939년 2차세계대전부터 현재까지를 상세하게 공부하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세 권을 다 합하면 1200쪽의 두툼한 분량이 된다. 무엇보다 원사료에 해당하는 문건들을 학생들이 직접 읽고 해석하도록 이끌고 있다.

우리나라 교과서도 근래 많이 달라져서 책 크기도 커졌고 사진과 도해, 연표가 체제가 허락하는 한 많이 제시되고 있다. 이 문제를 이미 교육이 많이 정돈된 외국의 체제와 함부로 비교하려는 것이 아니다. 교육학자들이 심혈을 기울여도 대번에 바꾸기 어려운 내부적 문제들이 걸림돌이리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이유가 어떻든 간에 현재처럼 국사와 세계사를 분리하는 방식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라도 쉽게 동의할 만하다. 교사는 국사 전공, 세계사 전공으로 나뉘어야겠지만, 교과서는 하나가 되어 10대에 세계 속의 한국이란 눈으로 시대와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개인으로나 국가로나 결코 손해날 일이 아니다.

중국에서 일하러 온 한 조선족 여성은 전직 회계사였음에도 이곳에 와서 글도 쓸 줄 모르는 아줌마로만 “무시당하는” 현실을 “한국으로” 느낀다.(<진보평론> 14호, 박수정, “한 인간은 곧 자신에게는 진실이며”) 비슷한 지적을 여기저기서 듣는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 교육 밖으로 밀려난 것도 큰 원인일 터이다. 역사 과목은 인종과 국적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존중하는 기회이며 자극이다. 문제의 핵심이 수능제도에 있음을 모르지 않지만, 과연 좋은 성적을 얻기에는 범위가 넓고 까다롭다는 것이 세계사를 방치하는 지금 같은 정책의 이유는 못될 것이다. 더 큰, 더 올바른 논리를 개발하자.

교육부총리 인선을 놓고 정부에서 장고를 해야 했던 것은 개인 신상에 관한 문제로 보이지 않는다. 이는 우리 사회의 말없는 분노와 또한 기대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인선에 대한 비판과 여망은 돈과 교육을 떼어놓는 교육철학, 공교육의 원리가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반영한다. 경제적으로 좋은 조건이면 지식, 정보, 교양 모든 면에서 우월해지고 돈이 없으면 견식도 취미도 문화적 참여도 대화도 빈한한, 그런 구도를 당연시하지 말자는 주장은 순진한 생각이 아니다. 획일주의도 아니고 민중주의도 아니다. 교과서는 공교육의 거울로서 사회를 비추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식당이 많은 나라에서 종일 음식을 만들고 나르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 엄마들이 공교육의 원리와 실천 아닌 다른 무엇을 원하겠는가.

노서경/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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