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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3.02.23(일)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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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권의 역사적 책무


내일이면 노무현 정권이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정권의 출발에 기대에 찬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단순한 정권교체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역사의 큰 전환기에 노 정권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 정권에 주어진 시간은 5년이고, 대통령제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실제로 일할 수 있는 기간은 그보다 짧다. 그 기간에 역사에 남을 업적을 이룩하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현재 주위를 돌아보면 남북이 서로 얽혀 어수선한 상황이다. 대북 경제협력 문제로 시비가 분분하다. 그 위에 북한 핵문제로 한반도가 전쟁위험에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다. 남북이 함께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려든 형국이다. 이는 역사 전환기의 상황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때문일 수도 있다. 이렇게 남북이 서로 맞물려 함께 진통을 겪는 현상은 남북이 민족공동체로서 상호의존적이고 피할 수 없는 관계라는 점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민족공동체의 차원에서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앞으로 한반도의 진로가 달려 있다고 하겠다.

지금까지 남북은 각기 서로 다른 논리로 세상을 파악해 오고 있다. 북은 거시담론의 오활함에 빠져 있다. 남한은 지엽말단에 매몰되어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이를 극복하고 만일 상호협력 속에 문제를 풀어간다면 이로부터 민족사의 새로운 방향 설정이 가능할 것이다. 과거에는 서로에게 가장 적대적인 정책이 결론이었다. 지금은 적어도 이런 현상은 서로 피하려는 데 뜻을 같이하고 있다.

지난 반세기 우리 사회를 규정해 온 것은 남북한 간의 전쟁 시나리오였다. 전쟁은 꼭 한국 사회 존재의 최우선 가치와 같았다. 이러한 파행의 역사는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한반도가 국제적인 분쟁에 휘말리게 된 상황과 미군 주둔 문제의 선후관계가 어떠하든 간에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하는 조건에서는 군사적인 긴장관계와 전쟁의 위험성은 상존할 수밖에 없다. 일부에서는 주한미군이 이 지역의 군사적 균형을 이루는 안전판 구실을 한다고 주장한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현상일 뿐이며 무한정 미군이 주둔할 수도 없는 일이다. 지금 남북이 과거의 맹목에서 벗어나려고 하자 다시 미국은 북한을 목표삼아 직접 개입해 오고 있는 것이다. 미군이 주둔하는 한 이런 상황을 근본적으로 피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난 세기 한국 사회는 분단과 전쟁 그리고 외세 의존의 타율적인 역사였다. 골육상쟁의 광기일 뿐인 전쟁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했다. 냉전의 최첨병 노릇이었다. 그 안에서 한국의 지배층들은 미국의 지시를 받는 편이 익숙한 일이고, 또 생존을 위해 별도로 고심할 필요 없는 가장 편한 방안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는 국가보안법의 족쇄에 갇힌 의식불구의 세계이고 무지의 세상이었다. 아직까지도 보안법이 만든 보수와 시대착오의 덫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대롱 속으로 세상을 내다보면서도 하늘 넓은 줄 모르고 살아왔다. 이제 그렇게는 세상을 이끌어갈 수 없다. 21세기의 가치는 냉전 이후 평화와 인권 우선에 있다. 갈등과 전쟁의 세계로부터 인류공동체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이런 가치에 적합한 사회운영이 되어야 한다. 낡은 가치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한국 사회의 미래가 좌우된다. 구각에서 탈피하지 못한다면 여전히 기득권 세력과 그들이 형성해낸 사이비 논리에 농락당하게 된다.

지금의 역사는 일대 전환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노무현 정권이기 때문에 이런 과제가 제기된 것이 아니라, 이러한 과제를 인식한 국민들이 그 책임자로 노무현 정권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올바른 역사의식은 대중 속에서 나왔다. 일부에선 포퓰리즘을 들먹이면서 변화의 동력을 차단하려고 한다. 그러나 사회지도층이 포기하고 돌아설 때 절망을 딛고 나선 것은 대중이었다. 이제 그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답을 주어야 한다. 만일 기득권층의 저항에 머뭇거리다 시기를 놓치면 지난날의 우를 반복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두차례의 민간정부가 겪은 시행착오들은 오히려 노 정권에게 유익한 교훈일 것이다.

안병욱/가톨릭대 교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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