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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3.02.09(일)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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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거리를 응시하자


당신들은 이 거리에서 행복한가 북한핵과 대북송금의 현안들이 아무리 중대해도 겨울 가고 봄 맞는 거리에서 이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집에서 서울로 나오면 사당네거리에 먼저 부딪치는데 그때마다 이 의문에 잠긴다. 왜냐하면 아무런 질서감도 없는 간판들,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보도의 검은 검 자국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근대사상에서 행복이란 나 혼자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의 권리이며 국가의 국민에 대한 의무사항이다. 만약 이곳만 그렇고 압구정동이나 광화문에 나가면 거리가 멋져서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면 그래도 나을 것이다. 예쁜 게 따로 있나 돈 따라 가는 거지. 그렇게 승복하고 일시나마 행복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사정은 그렇지 않다. 어디를 가나 그 지역의 특색과 경제력에 관계없이 간판들과 도시의 몰골은 누추함 그대로이다. 수원 성문 주위에도 검 자국은 길마다 번져 있고, 간판이 어지럽기는 신도시들도 마찬가지이다. 성형수술이 상식인 듯 필사적으로 아름다워지려는 세상에서 거리는 이렇게 남루해도 좋은 것일까.

도시의 모습은 말할 것도 없이 그 시대의 사상과 미학이 투영된 얼굴이다. 얼의 꼴이다. 도시공학자나 건축가가 아니라도 그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서울역에서 한국 기와의 선을 찾을 수 없는 이유는 자명하다. 해방 전 서울역은 도쿄역의 일부인 듯 닮아, 여기는 식민지라고 과시하는 투였다. 가보지는 못했지만 중동 메소포타미아 지역이나 북아프리카 해안이나 상흔은 깊다. 오랜 문명의 수원지라도 건축과 도시가 정신을 잃고 헤매는 것이다. 지금 우리들의 거리가 이렇게 산만하고 번영 속에 빈한한 이유도 충분히 헤아릴 수 있다. 지난 수십년 간 인구는 격증하고 인구밀도는 감당할 수 없었으며 도시는 통제를 벗어났다. 거기에 외래사조의 강세가 우리의 혼을 빼앗은 것이다. 무엇이 반드시 지켜야 할 미학인지 아무도 자신할 수 없었다. 전례없는 돈의 위세와 물질의 범람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승리한 듯 도취한 사람들이나 패잔병처럼 힘 빠진 사람들이나 다같이 마음이 산란한데 어느 정신에 집밖을 돌아보았겠는가

하지만 거리와 도시를 이대로 계속 방치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리라고 본다. 구에 따라 도서관들을 신축하고 또 정부에서 학교도서관들을 정비하겠다는 소식은 주춧돌이나 다름없다. 조만간 거리에 관해서도 지방마다 전문가들과 행정관들이 머리를 맞대 이 삭막한 도시들을 바꿔놓으리라 믿는다. 작은 공간이라도 여백이 흐르던 한국 건축의 정신이 그립지만 사라진 곳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그런 복고주의가 아니라 현대의 미학을 넉넉히 수용하여 이곳저곳 가다듬을 역량이 필경 나타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도 필요하고 예산도 절차도 난제이겠지만, 중요한 것은 내 집안만 아무리 일류로 디자인한들 도시가 이대로라면 소용없으리란 점이다.

우리나라 성매매춘 산업의 규모가 한 해에 24조원이며 공식적인 이 분야 종사자가 33만명이라는 보도를 밤 9시뉴스에서 하게된 것은 커다란 진전이다. 남의 이야기이고 어두운 부분이니 모른 척하겠다는 태도를 벗어난 것이다. 생존과 유한이 엉킨 이 어려운 문제에 감히 제언을 해도 된다면 한가지는 말하고 싶다. 우리 모두 지금보다 좀 조용하고 좀 차분하게 살자는 것이다. 2차대전의 참화를 겪은 독일은 폐허 속에서 시를 읽자는 운동을 먼저 벌였다. 여러 계획을 세워야 했지만 우선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면의 힘을 끌어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 당시와 같다는 이야기는 아니라도 우리도 어지간히 격동을 치러왔다. 부작용이 심각할 수밖에 없었다. 성의 매매춘이 많이 줄어든 날을 위해 우리들 사는 이 곳을 지금보다 정결하게 다시 만들자. 누구라도 작은 행복감을 갖는, 지하에서 종일 근무하고 지상에 나온 사람이 잠시 쉬어 가는 거리로 꾸미자. 어지러운 현장을 피해 어디로 가는 방법은 방법이 아니다. 지금 이곳을 응시하자.

노서경/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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