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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3.01.05(일)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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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위한 주도권/ 염무웅


히 ‘북핵 위기’라고 부르는 한반도의 긴장상황이 점점 험악한 국면으로 치닫더니 새해 들어 조금씩 해법을 찾아가는 듯하다. 지난 연말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의 감시관을 내보내고, 미국이 북한에 대한 해안봉쇄를 고려한다는 보도가 나올 때만 하더라도 국민들은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어려웠다. 심지어 이라크와 북한의 우선순위가 바뀔 수도 있다는 협박성 애드벌룬이 전파에 띄워지지 않았던가. 미국의 패권주의적 오만과 북한의 결연한 자세로 미루어 어느 쪽도 결코 물러서지 않을 듯이 보였던 것이다.

이 진퇴양난의 대치상태에 숨구멍을 뚫은 것은 바로 한국이었다. 지난달 30일 김대중 대통령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미국이 우리에게 제1의 우방임을 전제로 미국의 봉쇄정책에 반대하는 뜻을 밝혔고, 이어서 다음날 노무현 당선자도 일방적 북한 압박정책의 효과에 회의를 표시하면서 한국의 주권국가로서의 독자성을 강조했던 것이다. 지난날 우리 정부 당국자들이 미국보다 오히려 한술 더 떠서 강경발언을 일삼았고, 지금도 그 시절을 잊지 못하는 일부 구정치인들이 남아 있음을 상기할 때 대통령 또는 대통령 당선자가 이만한 지혜를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은 멀리는 오랜 민주화 투쟁의 축적된 역량이 있었기 때문이고, 가까이는 광화문 촛불시위의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든 이번에 뚜렷이 드러난 것은 미국이 아무리 세계 국방비의 거의 절반을 지출하는 군사적 초강국이라 하더라도 모든 것을 제멋대로 좌우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미국 스스로 보유한 엄청난 규모의 대량살상 무기에 비한다면 부시가 ‘악의 축’으로 지목한 나라들의 무장력은 아마 틀림없이 지역적 패권의 추구를 꿈꾸기는커녕 자국의 안전을 지키는 것조차 힘겨운 형편일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이 이라크 공격의 시나리오를 선뜻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주춤거리면서 명분쌓기에 시간을 보내는 것은 매장된 석유를 손에 넣으려는 목표의 노골성을 감추기 쉽지 않을 뿐더러 군사행동이 미국 자신에게도 상당한 모험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미국은 최대의 강자임이 분명하지만 절대적 강자는 아닌 것이다.

그런데 우리 겨레에게 평화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절대적 명제다. 1994년 미국 당국자가 계획했던 것과 같은 일이 오늘 실제로 한반도에서 벌어진다면 그것은 상상을 넘어서는 미증유의 재앙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맞춤형 봉쇄’가 공식정책으로 채택된 것이 아니라느니, 대화로 북핵 문제를 풀겠다느니 하면서 미국이 한발 물러선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것은 지난 5년 동안의 지속적인 화해정책이 거둔 실질적 성과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폭발 위험은 제거된 것이 아니라 이라크 때문에 연기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평화 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한 주도권은 이제 노무현 당선자의 손에 쥐어지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생각컨대 미국은 여전히 우리의 가장 중요한 상대역이다. 다만 문제는 지금까지의 수직적 관계를 어떻게 부드럽게 수평적 관계로 바꾸느냐다. 이 과정에서 얼마간의 마찰과 갈등은 불가피할지 모른다. 그러나 서로 존중하는 대등한 사이에서만 참된 우호가 성립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결코 비싼 대가가 아니다.

남한과 북한은 한 민족이면서 두 체제로 나뉘어 한 나라를 지향하고 있다. 이런 남북이 서로 어느 정도까지 요구하고 비판하며 기대할 수 있느냐 하는 것는 실로 어려운 문제다. 가령, 남한의 대통령이 ‘선군정치’ ‘강성대국’ 같은 구호에 담긴 군사주의적 노선의 수정을 북한 지도자에게 권유할 수 있을까. 또 북한의 국가안전을 유독 미국과의 불가침 조약에서만 구할 것이 아니라 남한·중국·러시아·일본 등 여러 나라가 무난히 수용할 수 있는 다국간 공조체제의 구축을 통해 보장받으라고 충고할 수 있을까 물론, 그것에 준하는 요청을 북한이 남한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수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민족 공조의 가능성을 여는 것이고, 분단의 벽을 허무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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