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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2.12.29(일)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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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노무현을 선택케 한 까닭은


대통령 선거 결과를 두고 여러 분석과 설명이 이뤄지고 있다. 그 가운데 익숙한 화두 하나는 세대간 대립이라는 시각이다. 20, 30대와 50, 60대간에 가치관과 견해에 차이가 있고 서로 지지하는 후보가 달랐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수적으로 우세한 젊은 유권자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결국 승리했다는 설명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이른바 지역감정으로 얼룩진 그간의 선거풍토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엿보인 바람직한 현상이라는 평가가 전제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목소리만 높고 사려 깊지 못한 젊은이들의 주장이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를 책임지고 있는 노장년층의 위상을 훼손해 불경스럽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세대문제로 설명해서는 진실의 많은 부분을 왜곡시킬 수 있다. 세대별 차이라는 것은 표면적인 현상일 뿐이다. 그동안 보도된 여러 조사 수치들을 살펴보더라도 세대차이를 논할 수 있을 만큼 크게 구별되지 않는다. 세대차이라는 표현은 관습적인 문화현상을 설명할 때 주로 사용된다. 역사의식을 설명하는 용어로는 적절하지 못하다. 이번 선거에서 기껏 이끌어 낸 교훈이 세대 갈등의 치유에 그친다면 이는 피상적인 관찰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날 위기에 처한 한국 사회를 구하기 위해 늘 역사의 전위에 나섰던 층은 다름 아닌 당시 20대 전후의 청년층이었다. 가까이 1987년 6월항쟁이 그랬고 1980년 광주항쟁이 그랬다. 1960년 4·19항쟁에서는 중고등학생들이 주축을 이루어 사회변혁의 위업을 이루었다. 3·1운동도, 갑오농민전쟁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기성세대가 한계에 부딪혀 체념해버리는 순간 우리 역사의 젊은 세대들은 그 한계를 극복하고 진보의 지평을 새롭게 개척했다. 그 역사들을 두고 세대간의 대립이나 갈등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지금의 50, 60대 가운데는 1960년에 전인미답의 4·19항쟁을 위해 커다란 희생을 치렀거나, 1970년대 극악한 유신독재에 맞서 자기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분들도 무수히 많다. 그 역사를 만든 분들의 위대성은 결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곧 우리 역사에서 청년들의 일부가 늘 역사의 요구에 따라 선도자로서 영웅적 소임을 수행해 왔다. 다만 옛날의 젊은이들은 지금 왜곡된 언론의 여론조작으로 선구자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해가고 있을 뿐이다.

그런 우리 역사에서 이번 선거는 젊은 투사들이 개척한 또 하나의 항쟁사이다. 지난 반세기 오욕의 역사를 극복하기 위한 혁명적 운동이다. 외세의존과 수구냉전의 공작정치를 거부하고 미래지향의 철학을 만들고 있다. 지금의 청년들은 그동안 체제 유지의 방편에 불과했던 선거를 사회발전과 역사진보를 위한 의미 있는 제도로 수용하였다. 그러므로 이번 운동은 그 결과뿐만이 아니라 그 형식에서도 미증유의 업적을 남긴 셈이다.

오늘 젊은 세대는 인터넷을 여의봉같은 무기로 활용하여 수구언론이 정교하게 구축한 억압구조를 무력화시켰다. 보수언론은 왜곡된 주장을 권력으로 행사하지만 인터넷은 다양한 의견들을 무수히 쏟아내 왜곡과 거짓을 거르고 진실과 바른 주장들을 눈덩이처럼 굴려 태산처럼 키워낸다. 지난날에는 목소리 높여 주장해야 했고, 유인물을 뿌리고, 대자보를 붙여가면서 동지들을 모았다. 그도 어려울 땐 끝내 자기 몸을 내던져 죽음에 이르기까지 정의를 부르짖었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 공간을 종횡으로 누비면서 한순간에 수만명 동지들을 확인하고, 수구언론의 선동적인 궤변을 일거에 무력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혁명은 지금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 이제 압제와 왜곡의 과거사를 청산해야 한다. 역사발전을 가로막았던 국가보안법을 철폐해야 한다. 민족 자주의 새역사를 시작해야 한다. 이런 과제를 앞에 둔 오늘 한국 역사는 3·1운동 당시 민족지도자들처럼, 백범 김구처럼, 아니 민초들을 이끌고 외세와 봉건지배층에 맞선 전봉준같은 역할을 기대한 것이다.

안병욱/가톨릭대 교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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