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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2.12.01(일)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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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가 이기는 선거/ 안병욱


앞으로 17일 뒤면 대통령 선거일이다. 그날 우리는 5년간 한국 사회를 이끌어나갈 책임자를 결정한다. 어느덧 9번이나 실시해 오던 일이다. 이쯤이면 이제 우리 사회도 선거의 효용성을 충분히 누릴 때가 되었다.

선거제도는 근대 인류사가 역사발전의 방안으로 마련한 지혜의 소산이다. 과거에는 지도자의 교체가 혁명에 의해 가능했다. 지금은 선거가 이를 대신한다. 선거는 공론에 따른 합리적인 선택과 평화적인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

선거과정에서 후보들은 각기 주장하고 설득하고 지지를 호소한다. 지난 정치를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현재의 과제가 무엇인지 짚어내고 처방을 모색하는 자리이다. 선거는 그렇게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공간이다. 이를 통해 올바른 좌표를 설정하고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게 한다. 그런 가운데 가장 적절한 일꾼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날 우리는 선거를 치를 때마다 야바위 정치꾼들의 노리개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의 농간에 따라 희망보다는 불안을, 자유보다는 억압을, 평화보다는 증오와 적개심을 높여야 했다. 우리의 선거는 한낱 독재를 위한 요식행위였거나 기득권을 고착시키는 방편이었다. 그런 선거이기 때문에 너무나 일상적으로 ‘하늘이 두쪽 나도 선거에 이겨야 한다’는 감정이 튀어나오고, ‘무능한 지도자를 선택한 국민의 패배’라는 따가운 비판을 부인하지 못하는 것이다.

되돌아 보면 가장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선거에서, 우리는 곧잘 감정에 좌우되곤 했다. 뻔히 음모인 줄 알면서도 감정의 자극에 휘말려 들었다. 언론이 들씌운 색깔론 혐의는 천형보다 무서웠다. 오도된 낙인이고 파렴치한 공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뿌리치지 못한다. 그 결과 오늘의 혐오스러운 정치인들을 키워낸 것이다.

그러나 지금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를 가위눌리게 했던 정치판이 바뀌고 있다. 3김 주도의 과두정치가 퇴장하고 밑으로부터 경선으로 후보를 선정해야 할만큼 상황이 바뀌었다.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지역감정에서 해방될 가능성도 크다. 더 이상 색깔론을 통한 마녀사냥은 위력적이지 못하다. 이런 조건을 잘 키워낸다면 이번 선거는 과거의 오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일 수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다. 적대와 갈등의 분단 역사를 풀어야 한다. 국가보안법 체제를 철폐해야 한다. 세계는 지금 미증유의 기세로 변하고 있는데 21세기에서도 미국의 하수인으로 살아갈 것인가 두 미군 병사의 살인범죄에서 촉발되기는 했지만 미군주둔 문제는 이번 선거의 가장 심각한 쟁점이다. 그리고 자본의 탐욕를 위해 어느덧 천년 쌀농사까지 빼앗긴 문제도 남아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 가장 적극적이어야 할 기성 정치인들은 여전히 흘러간 10년 전, 20년 전 타령이다. 과거 집착의 수구적 행태나 보수 지상의 퇴영적 사고 밖에는 한발짝도 내딛지 못한다. 그들에게 어떻게 장래 희망을 걸고 미래를 기탁할 것인가 그들은 더 이상 대안이 되지 못한다. 주어진 과제를 올바르게 수행하기에는 안목이 모자란다.

한국 정치의 고질을 그대로 재생시키려는 정치인들은 역사의 찌꺼기들이다. 퇴물들에 의존할 사회가 지났다. 그들에 맡겨서는 세상의 도전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우리는 지난 6월 월드컵에서 우리 민족의 역량을 한껏 발휘할 수 있었으며 당당한 세계적 위상을 확인하였다. 권위적이고 구태의연한 통제력이 아닌 거스 히딩크 감독의 열린 지도력을 통해서 이루어낸 성과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절실한 것은 그와 같은 새로운 발상전환의 지도자이다.

오늘의 보수 언론은 대단히 광란적이다. 지금 그들은 선거판을 또 한철 대목장으로 삼고 온갖 협잡을 벌이고 있다. 사람의 감정을 휘저어 이성을 마비시킨다. 마치 음지에서 자라는 현란한 독버섯과 같다. 그 꾐에 휘말리거나 공작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중심을 세울 때 우리는 진정한 승리를 확보할 것이다.

안병욱/가톨릭대 교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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