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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2.11.24(일)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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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인권 도둑질'/ 박원순


“강령에 6·15남북공동선언을 지지·이행하여 연방제로 조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노력한다고 명시하는 등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지지·선동하고, 자주·민주·통일을 투쟁강령으로 삼아 이적단체인 범민련을 강화하는 한편, 미군철수 및 국가보안법 철폐 등 북한의 주의·주장에 동조하는 활동을 할 목적으로 한국청년단체협의회를 조직하였다.”

위와 같은 혐의로 그 단체의 의장과 위원장, 사무처장이 구속되고 지금 재판을 받고 있다. 범죄 혐의만으로 보아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6·15남북공동선언을 지지하는 것이 이적행위란 말인지, 그렇다면 6·15남북공동선언이 이적행위라는 것인지 헷갈리기만 한다. `자주’와 `민주’와 `통일’은 한국청년단체협의만이 아니라 우리 온 국민이 지향해야 할 가치가 아닌가 더구나 민주주의는 주의·주장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데 그 핵심이 있다. 북한이 꼭같이 주장하는 내용이라고 해서 모든 주장이 이적행위가 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미군범죄가 창궐하고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군철수 주장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동두천 여중생 사망사건에 대한 미군의 재판에 대한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이 모든 사람들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말인가

국가보안법이 남용되는 마당에서 그 철폐를 주장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국가보안법의 개폐는 필자도 1980년대부터 주장해 온 바이다. 국가보안법과 민주주의는 결코 양립하기 어렵다는 것이 1980년대 이후 인권변론을 줄기차게 해 온 변호사들의 거의 공통된 견해이다. 이 모든 변호사들이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는 것인가

한국청년단체협의회와 그 간부들이 실질적으로 국가안보를 위해한 어떤 행동을 한 것은 없다. 단지 이런저런 주장을 했을 뿐이다. 그것도 반드시 반국가적이라고 볼 근거도 없다. 더 나아가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근간이다. 그래서 헌법학자들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우월적 지위를 갖는다고 말한다. 말하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처벌받지 않는 게 원칙이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없는 이상 어떤 주장도 처벌받을 수 없는 것이다. 생각의 다양성, 그것은 민주주의 기초이고 최고의 가치이다.

이 문제는 그 단체의 간부를 몇사람 구속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여기에 가입한 41개 단체와 그 구성원 모두가 이적단체 구성원으로 변한다. 이들은 이제 언제라도 처벌할 수 있는 신분으로 변하는 것이다. 강령의 몇개 조항과 그 단체 간부들의 몇마디 주장 때문에 그 단체의 구성원 모두가 범법자가 된다는 것은 설명하기 어렵다.

지난달 필자는 오스트레일리아 캔버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국가안보법률에 관한 세미나에 다녀온 적이 있다.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도 국가보안법과 비슷한 법률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의 국내안전법이 바로 그것이다. 인도네시아도 비슷한 법률을 갖고 있다가 최근 폐지했다고 한다. 비감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인도네시아보다 못하단 말인가 아니면 우리를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와 비교할 수 있을까

내가 인턴으로 근무한 적이 있던 워싱턴의 미국시민권연맹 사무실 앞에는 “자유는 영원한 감시의 대가이다”라고 씌여 있었다. 사람들은 지난 시기 군사독재 시절을 지나면서 이제 인권은 더 이상 우리의 관심사가 아닌 것처럼 여기고 있다. 이 무관심을 비웃기라도 하듯 검찰청사에서 고문으로 인한 피의자 사망사건이 일어났다. 인권은 마치 새장 속의 새와 같아서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지면 새장을 빠져나와 훨훨 날아가 버리고 마는 존재이다. 지금 우리가 이웃들의 인권에 무관심한 사이 우리 자신의 인권마저 멀리 멀리 도망가고 있다. 대통령선거에 모든 국민들이 몰두하고 있는 사이 벌어지고 있는 이 ‘인권의 도적질’에 우리 모두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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