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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2.11.17(일)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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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개혁 '국민들 몫'/ 노서경


외국책이며 학술서적이지만 책을 한 권 소개하고자 한다. 2001년 신간이고 프랑스의 이름 있는 출판사인 갈리마르에서 간행했다. 문제는 책의 주제와 내용인데, 책제목을 <알제리전쟁기의 고문과 군:1954-1962>로 옮길 수 있다. 저자는 젊은 여류학자인 라파엘 브랑슈. 2000년 12월 파리 정치학연구소에서 수여한 박사학위논문을 간추린 책이다. 갈리마르는 신진 연구자의 학위논문을 즉각 출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고문 문제를 다룬 브랑슈의 책은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다.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알제리는 1830년 이래 식민지가 아니라 프랑스의 해외영토였다. 프랑스 함대가 인천 앞 바다에 나타난 해가 1866년인데, 그보다 30여년 전에 프랑스는 알제리를 합병했다. 그 알제리에서 1954년 11월 만성절을 기해 민족해방전선이 주도하는 독립전쟁이 시작되고, 그 날 이후 1950년대 식민지 해방운동 중에서도 치열한 투쟁이 8년을 계속한다. 프랑스 역시 이 전쟁을 치르면서 심각한 위기를 겪지만 고문 문제는 당시부터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현지에서 고문을 당한 한 프랑스 젊은이가 의사의 해부인 듯 냉정하게 기술한 <신문(訊問)>이 종전 직전에 발간되었다. 그러자 전쟁 중이고 고문은 전략적으로 불가피하다고 설명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소수의 교사와 대학조교, 작가들이 그 책을 지지했다. 그 뒤 고문을 문제삼은 책들이 몇차례 나왔고, 브랑슈의 논문은 이 모든 시간과 여론을 딛고 있다고 보인다.

1쪽에 50줄, 활자가 조밀한 474쪽의 책을 대하면서 스스로 묻게 된다. 별로 들춰내고 싶지 않은 일, 이미 지나간 험한 일을 굳이 낱낱이 조사해 연구하고 출간하고, 또 신문들이 깊이 있게 논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갈리마르 기획 시리즈에는 이 책뿐 아니라 <수용소들의 프랑스:강제수용 1938-1946>도 들어 있다. 수용소는 나치 독일이나 옛소련 스탈린 체제 하에서만 보는 괴물이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전시의 비시정부 하에서 곳곳에 있었다는 보고이며 조사이다. 이른바 전 지구적 자본주의 하에서 투자와 투기와 광고가 사람을 옥죄는 것은 어디서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프랑스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서 나날이 목도하는 것은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열띤 역사의식이며 지식의 대중화이다. 지금 알제리에서도 브랑슈의 작품 같은 연구가 자신을 겨냥하는지도 모른다. 현재 좀 완화되었지만 알제리는 1990년대 내내 살상과 납치, 인권유린으로 폭력의 소용돌이에 들어 있었다. 어렵게 얻은 독립을 민주화로 연결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알제리 작가와 지식인들은 더 분발할 수도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 자리에서 브랑슈의 책을 알리는 이유는 이번 검찰에서 일어난 사건을 우회해서 비난하는 데 있지 않다. 사건을 비난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희생 앞에서 정작 해야 할 일은 비난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백 위주가 아니라 증거주의를 검찰에서 온전히 수립하도록 일반이 사법제도의 개혁을 지지하고 진실로 원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이 사직한 것은 20년, 30년 전 정치상황을 돌아보게 한다. 1980년, 1980년대, 그에 앞선 유신체제에서 제도적 폭력은 당연한 듯 자행되었고 책임은 흔히 부재했다. 지난 4년간 경제적, 사회적 민주화의 지체에 실망도 컸다. 운동현장의 고통이 클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최루탄 속에서 살지는 않았다. 어느 정부가 새로 집권하든 시대를 거슬러 탄압적일 리 없다고 믿지만 어떤 형태든 후퇴는 있을 수도 있다.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것은 우리들 다수의 몫이다.

노서경/ 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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