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전과 총파업 유감
흐르는 말들을 듣고 있으면 마치 큰일이 벌어진 것 같다. 부동산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본고사 도입을 초동 진압한다고 한다. 노동운동은 노동부장관 퇴진, 중앙노동위 해체, 최저임금 재심의 등을 내걸고 정부에 대해 전면전을 다짐했다. 농민운동도 초유의 총파업 투쟁을 조직하여 세계무역기구(WTO) 쌀 협상 결과의 국회비준 저지를 결의했다. 말하는 이들의 의도는 그렇지 않겠지만, 기호 그 자체만 보면 마치 ‘반란’의 시대가 도래한 것 같다. 이러다 좀체 메울 수 없을 정도로 균열이 깊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참여정부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배제의 문화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 문제의 사회구조 분석과 해결 수단·절차를 준비하지 않은 채, 터져 나오는 공격적 기호가 너무 많다. 장기보유자, 임대사업자, 성실납세자 등을 세심하게 구별하지 않고, ‘강남’과 ‘수도권’을 통째로 거론한다. 공교육의 질을 높이는 방안이나 현실적인 선발모델에 대해 논의하기 앞서 대뜸 ‘비겁한 서울대’라는 말부터 나온다. 노동자나 농민도 박탈감과 모욕감을 느끼고 있음에 틀림없다. 곳곳에 적을 만들고 다양한 계층에서 협공을 받는 것을 보면, 참여정부의 적의가 꼭 사회경제적 구조에 뿌리를 둔 것 같지는 않다. 어쨌든 정부에 대해 적대적이고 폭력적인 집단심리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정부의 무모함에 납득할 수 없는 측면이 많기는 하다. 그러나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이 내놓는 기호들에 대해서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현재 노동문제의 핵심은 고용이 양적·질적으로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노동운동이 정부와 자본의 ‘더러운 결탁’의 뿌리를 뽑겠다는 것은, 말과 실체 사이에 괴리를 느끼게 한다. 현실을 보면, 산업구조의 변화로 제조업에서 정규직 중심으로 고용이 창출되는 시스템이 해체되고 서비스업 위주가 되면서 고임금의 안정된 고용을 보장하기 어려워졌다. 글로벌화는 개별 국가의 거시경제 조절 능력을 약화시켰고 경제구조의 변동성을 크게 함으로써 불안정한 고용 형태를 증가시켰다. 전세계적으로 생산시스템이 확장되는 가운데, 한국은 물론 선진국들도 고실업 모델 아니면 불안정고용 모델의 양자택일을 강요받고 있다. 국가를 압박하고 법·제도를 만들어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는 있는 것은 아니다. 농민운동에서 제기하는 쌀 협상 원천무효화 주장도 현실에서 대체 가능한 방안이 되기는 어렵다. 이미 농업의 자유무역체제는 글로벌 차원에서 제도화됐다. 국내에서도 영양, 편리성, 입맛 면에서의 차별화된 선호를 추구하는 소비자가 대거 등장해 식품소비가 선진국 수준으로 고도화·외부화되고 있다. 쌀이 농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높지만, 국제시장과 국내시장에 연동되지 않는 생산과 보상 체계를 계속 가져가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간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은 어려움 속에서도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그러나 이 운동들은 일국적 체제 안에서 성장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국가의 무능력은 운동의 무능력이 되기도 한다. 이제 정부는 물론 진보 운동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함께 하락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현재의 불안정한 교착상태에 저항하는 경쟁세력이 잘 조직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반란’이 될 것이다. 그것을 원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정부도, 노동운동도, 농민운동도, 이제 칼의 노래를 거두어야 한다.

이일영/한신대 교수ㆍ경제학

기사등록 : 2005-07-12 오후 06:35:00기사수정 : 2005-07-13 오전 02: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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