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는 키스하면 안되나?
고교 시절에 북한 영화 <춘향>을 보고 처음으로 “코리아”를 알게 된 인연 때문일까? 필자는 영화광은 아니지만 5년 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제작됐을 때 관련 기사들을 꼬박꼬박 읽었다. 그 기사들 중에서 관심을 끌었던 부분 중 하나는 그 당시 춘향역을 맡았던 고등학생이 과연 러브신에서 연기를 해도 되느냐라는 논란이었고, 또 하나는 2분8초짜리의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찍느라 이틀이나 소요됐던 것에 대해 영화감독이 “어린애들이 뭘 해봤어야지”라며 10대 배우들의 “경험부족”을 탄식했던 것이었다.

십대 후반의 배우가 연애 장면을 찍을 자격이 없을까? 현재 구미 지역 성생활 시작의 평균 연령이 16살 정도인데, 이는 <춘향전>이 보여주는 우리 자신들의 가까운 과거의 풍습과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신체가 성숙되어지고 애인이라는 타자에 대한 수용을 통한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나”의 확립이 인격의 성숙을 위해서도 요구되는 십대 후반의 나이에, 연애를 경험해본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일 것이다. 연애보다 진일보하여 타자와의 지속적 관계를 시도해보는 것도 성숙 과정에서 디딤돌이 될 수 있겠다. 북유럽에서는 고교 시절부터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애인과의 소중한 사랑을 경험해 보는 학생들이 많이 있는데, 이러한 경험은 그후 타자에 대한 이해와 양보, 상호 존중과 예절, 인내심을 키워 튼튼하고 평등한 가정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학교에서 피임법 등 성생활을 위한 지식들을 가르치고 “입시 지옥”이 없고 대학교의 학비가 없는데다 국가로부터 생활비를 장학금·융자 형태로 얻을 수 있기에 이와 같은 “연애 낙원”의 출현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면 십대의 사랑을 담은 불멸의 명작 <춘향전>을 세계에 선사해준 우리의 오늘날 사정은 어떤가? 십대 배우들이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를 부르고 화면에서 사랑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면 “미풍양속”을 해치게 된다는 것이 일부 보수적 “어르신”들의 타령이었고 감독의 말대로 십대 배우 자신들에게도 성이란 낯설고 두려운 일이기도 했을 것이다. 고등학생의 독립적인 동거생활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중·고등학생들이 키스를 하다가 “들키면” 교내 봉사명령 등 처벌까지 받는, 성에 대한 억압성의 차원에서 영국의 빅토리안 시대의 현대판쯤으로 보이는 이 사회에서 <춘향전>이 아무리 고전의 위치를 우아하게 누리고 있어도 성춘향과 이몽룡의 이야기를 실제 재현해보는 것은 십대들에게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이미 바깥 사회는 금기들이 거의 파괴된 후기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학교만큼은 <춘향전>을 “음탕한 소설”로 치부하고 조선의 조혼 풍습이 국가와 임금을 위한 헌신에 바쳐야 할 청소년들의 기력을 일찌감치 “음란한 짓”으로 돌려 소모시켜버린다고 생각했던 개화기 계몽주의자들의 “청소년기 순결주의” 이데올로기를 여전히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결국, 위계질서라는 이름의 폭력이 제도화돼 있는 학교의 공간에서 부자연스럽게 억제를 당한 성욕이 때로는 성추행이나 성폭행과 같은 반인륜적·반사회적 형태로 용출되고 때로는 탈선과 개인적인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청소년의 성이 폭력 서클에서의 왜곡된 애정행각이나 성폭력, 폭력적이며 남성우월적인 음란물 열람보다는 차라리 서로에 대한 아낌과 존중을 바탕으로 한 따뜻한 키스나 평등하고 자유로운 결합으로 표출되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우리가 자연의 지혜를 따를 줄 알았다면 십대 후반 학생의 키스에 처벌을 가하는 대신 그들의 멋진 성장에 상을 줄 줄 알았을 것이다.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기사등록 : 2005-07-11 오후 08:11:00기사수정 : 2005-07-13 오전 0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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