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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사설/칼럼 등록 2005.06.29(수) 20:22

‘반일 앞잡이’로 불리는 사람들

일본의 우익진영으로부터 연일 몰매를 맞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붙여진 딱지는 반일 매국하는 앞잡이요 배신자들이다. ‘이쪽’이 아니라 ‘저쪽’에 붙어서 나라와 겨레의 자존심을 훼손하는 정신나간 사람들로 매도되고 있다. 여기서 이쪽은 일본, 아니 일본의 우익진영이고 저쪽은 한국과 중국 등을 지칭한다. 한국의 미디어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을 쓴다면 반일 매국하는 앞잡이들은 바로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시민활동가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우익들은 2차대전 종전 후 이뤄진 역사교육을 부정한다. 종래의 역사교과서가 모두 자랑스런 과거를 부정하는 자학사관에 기초해 쓰인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애국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들의 대표적 숙원사업이 식민지 수탈과 침략전쟁의 가해 사실을 대폭 축소하거나 왜곡한 후소사판 새로운 역사교과서 보급이다. 시민단체 활동가나 지식인들이 4년 전에 이어 다시 이 교과서 채택 반대운동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으니 이들보다 더 미운 눈엣가시가 따로 없는 것이다.

일본의 우익단체들이 이들의 활동을 반일매국 행위로 몰아가는 것은 일제 때 침략전쟁과 국수주의적 정책에 저항했던 모든 사람을 ‘비국민’으로 탄압했던 집단적 광기의 연장선에 있다. 우익의 주장은 한국과 중국이 일본으로부터 무언가를 뜯어내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과거사를 끊임없이 들먹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생트집에 더는 고개를 수그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에 하나 우익의 주장이 일반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일본의 미래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위엄을 갖춘 대국이 되기보다는 동아시아의 외톨이가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마음을 열고 겸허하게 이웃과 대화를 하지 않는 나라가 그 지역에서 인정받는 중심국이 될 리가 없다.

그렇다면 일본을 구할 진정한 애국자들은 누구인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나라가 이웃들로부터 비웃음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동아시아 공동체 실현을 위해, 후손들에게 양식이 통하는 사회를 넘겨주기 위해 편견에 맞서 싸우는 활동가들이다. 우리는 이 활동가들이 온갖 욕을 들어가며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단지 기억할 뿐만 아니라 이들의 용기와 신념과 자세를 배워야 할 것이다.

이중삼중의 배신자로 몰린 사람도 있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같은 이가 그런 부류에 든다.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을 전후해 한국의 민주화 운동 지원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그는, 일본에서는 북조선의 앞잡이, 한국에서는 친북 반체제 인사로 기피인물 취급을 당했다.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음에도 오랫동안 한국에 입국조차 금지됐고, 지난 3월에는 〈한겨레〉에 기고한 독도 문제에 관한 칼럼으로 다시 역적 소리를 들었다.

러시아 근대사 전공이었던 와다 교수가 한글을 배운 것은 70년대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태가 계기가 됐다. 일본에서 동아일보 구독운동을 벌이다가, 신문 내용을 읽지 못하면 의미가 없기 때문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함께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때 교재로 사용한 것이 동아일보에 난 격려광고 문안들이었다.

이제 한-일 관계에도 상전벽해의 바람이 불어 많은 일본인들이 ‘한류’ 바람에 자극받아 스스로 한글을 배우는 단계에 들어섰다. 이것은 분명히 두 나라 관계에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양식을 갖춘 일본인들이 앞잡이로 몰리고 있는 잘못된 풍조가 사라지기 전에는 한-일 관계의 질적인 성숙을 얘기할 수 없을 터이다.

김효순 편집인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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