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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3.11.19(수)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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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을 가져다주는 한국인


‘마이 꼬리.’

이라크 모술에서 3개월 파견근무를 하면서 나는 이렇게 예쁜 별명을 하나 얻었다. ‘마이’는 그곳 사투리로 물이고 ‘꼬리’는 아랍어로 한국이니 ‘물을 가져다주는 한국인’쯤 되겠다. 내가 일하는 단체가 학교를 통한 식수 및 위생사업을 벌였기 때문이다.

수도관이 끊어진 곳은 이어주고, 없는 곳은 우물을 파는 등 긴급 구호사업을 통해 약 7만5천명의 학생들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십수년 동안 식수가 없어 설사 등 온갖 수인성 질병에 시달리던 아이들은 콸콸 나오는 수돗물을 보면 “마이, 마이”(물이다 물) 환호를 지르며 좋아했다. 내가 현장에 나타나면 아이들이 삽시간에 구름처럼 몰려들어서 ‘마이 꼬리, 마이 꼬리’ 장단까지 맞추며 합창을 했다. 지역주민은 자연스레 한국은 물을 가져다주는 고마운 나라라고 여기고 있었다.

이 식수사업비에는 정부 지원금이 들어 있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 국민은 자기도 모르게 이라크 어린이들에게 깨끗한 물을 가져다 준 것이다. 이렇게 보면 마이 꼬리라는 별명은 내 개인의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애칭인 셈이다.

어떻게 우리가 낸 세금이 모술까지 가게 되었을까 바로 공적개발원조(ODA) 덕분이다.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경제개발과 복리증진을 목적으로 한 지원으로, 한국에서는 1991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무상원조와 유상원조가 있는데 전자는 한국국제협력단을 통해, 후자는 수출입은행을 통해 지원된다. 이 한국국제협력단의 자금 중 일부가 구호 및 개발 엔지오를 통해 지구 구석구석까지 한국의 손길을 뻗고 있다.

그뿐인가. 나는 이번에 프로젝트매니저라는 중책을 맡았다. 한국 외에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 자금 등 약 40억원 규모의 사업을 총괄하는 자리인데 한국 월드비전으로서는 53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여러 명의 막강한 후보를 제치고 한국인인 내가 그 자리에 임명된 것도 정부지원금이라는 든든한 ‘빽’ 덕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 책임자가 사업을 직접 진행하니 한국의 인지도와 호감도가 높아질 수밖에. 그래서 과중한 업무와 신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파견근무 내내 뿌듯하고 즐거웠다.

솔직히 그동안 나는 이 원조금 때문에 싫은 소리도 많이 들었다. “어려울 때 막대한 도움을 받았던 한국이 살 만해진 지금 다른 나라를 돕는 데는 어쩌면 그렇게 인색한가요”

그때마다 나는 궁색한 대답을 했다. “수혜국이 원조국으로 바뀐 나라가 한국말고 또 있나요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죠.”

그러나 한국이 해외원조에 얼마나 인색한지는 통계가 말해준다. 우리가 받은 원조금 총액은 약 130억달러이고 원조한 총액은 약 22억달러다. 갚아야 할 ‘은혜의 빚’이 이렇게 많은데도 우리는 국민총소득의 0.06%, 일인당 5달러만을 공적개발원조로 내고 있다. 이것은 유엔 권장의 0.7%는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0.23%, 일인당 63달러에 크게 모자란다. 한국과 국민소득이 비슷한 그리스의 0.17%, 포르투갈의 0.25%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난다. 단번에 평균치까지는 어렵더라도, 경제규모 세계 13위라는 한국의 위상과 국력에 걸맞으려면 최소한 0.1%로는 올려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주면서도 인색하다는 소리는 정말 그만 듣고 싶다.

긴급구호 현장에서 지원금은 생명줄과 다름없다. 재작년 전쟁 직후 서아프가니스탄에서는 극심한 영양실조로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4살 넘은 아이가 걷기는커녕 제대로 앉지도 못했다. 숨만 겨우 붙어 있는 아이에게 시간 맞추어 콩가루로 만든 영양죽을 먹이니 2주일 만에 눈을 맞추며 방긋 웃었다. 아이를 살린 영양죽 값은 한 달에 만원. 그해 겨울, 우리는 무수한 아이들을 살렸는데 이 영양죽 사업에도 한국국제협력단을 통한 정부 지원금이 들어 있었다.

우리가 노력한 0.1%가 어딘가에서 100%의 생명으로 돌려진다면 이보다 가치있는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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