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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3.09.17(수)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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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가‘가 직업이 되는 세상


장정일이 소설가로 데뷔했을때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동회같은 곳에 말단으로 취직하여 하루 여덟시간만 일을 해 생계를 유지하고 나머지 시간은 읽고 싶은 책 마음껏 읽고,좋아하는 재즈를 실컷 들으면서 사는 생활을 꿈꾸었다는 것이다. 좋아하고 행복감을 느끼는 일만 하고 살아도 인생 100년이 모자랄 것 같아서였다고.

최근 젊은이들 가운데는 최소한도의 수입만 보장된다면 월급은 아무래도 좋다며 장래가 불투명한 직장에 들어가거나, 최소한도의 생계를 위해 부업정도에 지나지 않는 일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사는 층들이 늘어나고 있다. 안정된 생활, 직업적인 성공을 위해 평생을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온 나이든 세대들에겐 자신의 자녀들이기도 한 이러한 젊은이들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을 뿐더러 무책임하게 여겨진다. 이들의 특징은 결혼에 대해 회의적이고 자녀를 낳는 일에는 더욱 더 머리를 흔든다는 점이다. 먹을 것 못먹고 즐길 것 못 즐기고 자녀들의 성공을 위해 희생해온 부모들에게 이들은 엄청난 배신을 ‘때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편에선 부모세대들의 가치관에 따라 아니면 출세와 성공, 안정된 보수가 있는 직종에 진출하기 위해 맹렬히 경쟁하고 있는 젊은 층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찌감치 성공이나 출세의 티켓이 보장되는 열차에 타기를 거부하거나 그 열차에서 내려오기로 결심한 친구들은 쿨하게 아주 쿨하게 그런 층들을 불쌍해 한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격언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온 부모세대들로선 ‘출세 성공 그거 좋치 그런데 그런거 당신들이나 하슈 나는 쳐질테니‘ 하며 버젓한 직업없이 표류하며 이름은 커녕 가족조차 남길 생각이 없는 젊은이들이 한심하다면 한심할 것이다.

월급 2백만원이상을 받으며 잘 나가던 아들이 어느 날 사표를 내고 영화사 홍보요원으로 취직했단다. 말단이다. 월급은 겨우 차비와 점심값 정도. 그래도 행복하단다. 국내유수의 대학을 졸업한 딸이 외국유학에서 요리학교를 다니고 돌아와 취직한 곳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파만 썰고 있어도 행복하다고 한다. 유학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시간강사를 하다가 용단을 내려 식품점 주인이 된 아들을 보는 부모의 심정은 어떤 것일가.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21세기의 대표적인 문화적 코드로 떠오른 것이 신유목민세대이다. 이들은 유목민처럼 정규직을 거부하고 주거도 직업도 일정하지 않게 떠돈다. 가족도 때에 따라 변한다. 동성이건 이성이건 나이차가 있건 없건 뜻이 맞는 친구등과 함께, 혹은 혼자 떠돌며 가변적인 삶을 산다. 직업이란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만은 아니었다. 그것을 통해 사회적 관계를 갖고 소속감을 느끼며 안정감을 갖는 수단이기도 했다. 그러나 인터넷의 발달로 노트북하나만 있으면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소통이 가능하며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소속감을 느낄수 있게 되었다. 출세니 성공이니 가족적 부담이니 하는 단어들이 존재하지 않는 해방구에서 자유롭고 창조적으로 사는 군상들이 세계적으로 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최소한도의 돈만 벌고 즐기며 살겠다는 세대들이 이에 속한다 할수 있다. 몇년전 젊은이들이 벌이는 문화이벤트에 갔더니 어떤 친구가 공상가라고 쓰여진 명함을 주었다. 공상가도 직업인가 했었는데 그 친구는 밴드도 하고 문화이벤트도 벌이고 글도 쓰고 하더니 요즈음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에 공상가라는 직함을 달고 고정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전형적인 유목민세대이다.

만혼, 독신가정, 무자녀 가정등으로 출산율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이러한 유목민 세대 출연의 전조였다 할수 있다. 모든 부모들이, 모든 학교가, 모든 국가기관이 경쟁사회를 향해 뛰라고 뛰라고 독려를 해도 뛰지 않는 세대들이 있다는 것이 앞으로 우리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부모세대의 경직된 직업관과 인생관,진학교육에 매달려 있는 우리나라의 교육현실로는 도저히 이들을 감당할수는 없으리라는 사실이다.

김선주 논설위원 sunj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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