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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03.06.25(수)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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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룻바의 아이들


여기는 이라크의 알 룻바. 요르단 국경에서 이라크로 1시간 반 정도 들어간 도시다. 국경에서는 미군이 여권검사를 한다. 지금 이라크는 입국비자도 필요 없는 무정부상태다.

지난 5월에 이어 두 번째로 이곳에 왔다. 군사시설이 많은 탓에 이번 전쟁 때 지도상에서 사라질 뻔할 정도로 폭격이 심했던 곳이다. 내가 속한 단체는 북부 모술지역과 이곳에서 전후 복구 긴급구호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인구 2만5천명의 작은 도시 알 룻바는 전쟁의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 병원과 곡식창고는 흔적도 없이 파괴되었고, 은행이나 우체국은 반쯤 부서진 채로 영업 중이다. 학교는 거의 약탈당한 상태. 탁자, 형광등, 커튼은 물론 책상, 걸상 심지어 수도꼭지까지 몽땅 털렸다.

제일 큰 문제는 물이다. 지난 10년간의 경제제재 때문에 상수도 관리가 소홀해 물 부족이 심각했는데 이번 전쟁으로 그나마 있던 상수도 관이 파괴되어 식수 공급이 거의 끊긴 상태다. 물탱크에서 사먹는 물은 1000리터에 1달러, 교사의 한달 월급이 5달러 남짓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물값으로 생활비 전부를 써도 모자랄 지경이다. 이곳 의사 말로는 환자의 50%가 아이들인데, 대부분 불발탄을 가지고 놀다가 다치거나, 더러운 물을 마셔서 생긴 수인성 전염병 환자라고 했다.

기초의약품 부족도 큰 문제다. 아이들이 다쳐 병원에 실려와도 발라줄 화상연고도, 감아줄 붕대도 없다. 소독약도 없고 진통제도 없다. 숙련된 의사는 많지만 그들을 고용할 돈도 없다.

월드비전에서는 이 도시의 초·중학교 12곳 전부를 개축하는 사업과 아이들이 적어도 학교에서는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물탱크 및 정수기를 설치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긴급히 필요한 기초의약품 공급도 하고 있다.

전쟁터에서는 총알 한 알이 사람을 죽이지만, 긴급구호 현장에서는 깨끗한 물 한 통, 링거 한 병이 사람을 살린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이곳에 와보니 물과 의약품 공급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바로 아이들 때문이다.

이곳 아이들은 국제구호단체 직원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른다. 나 같은 동양인은 괜찮지만 백인은 모두 미국인이라고 여기며 적개심을 보인다. 우리가 지나가면 불끈 쥔 주먹을 흔들며 “우리의 혼을 바쳐, 우리의 피를 바쳐, 어버이 사담을 지지합니다”라는 구호를 외쳐댄다. 한 아이가 돌을 던지면 모두들 따라서 우리에게 돌을 던진다. 그러나 한 아이가 웃기 시작하면 모두 단박에 순진무구한 얼굴로 돌아가 양손을 흔들며, “마라하바, 마라하바”(안녕, 안녕)를 외치며 따라다니면서 좋아한다. 아이들은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모른 채, 아직도 전쟁 전 어른들이 가르친 대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 초등학교 하미르 교장선생님도 걱정이 태산이다. 아직도 “우리는 어버이 사담을 사랑합니다”라는 문구투성이인 교과서로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전쟁 후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단다. 학교에 오기 싫어하는 아이도 많고 수업에도 아주 수동적이란다. 어제 1학년 수업 도중 미군 정찰기 소리가 들리니까 남자아이들은 다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고 여자아이 몇 명은 비명을 지르면서 그 자리에서 오줌을 싸더란다.

이렇게 아이들은 전쟁이 끝난 지금도 적의와 두려움과 불안을 그대로 안고 살고 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아보지 못했으니 이런 반응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다. 어떻게 하면 이 어린 친구들에게 이 세상에는 사랑과 평화도 있다는 것을 전할 수 있을까

오늘도 호주 직원과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돌을 맞았다. 돌을 던진 아이를 쳐다보았다. 10살 남짓의 꼬마. 내가 화를 내는 대신 웃어 보이니 아이가 어쩔 줄 몰라했다. 그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긴급구호팀장으로 나는 전후 이라크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분명, 깨끗한 물을 가져다주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한비야/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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